💌 3호의 첫 번째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릴레이 글쓰기🏃 3호에서 땡땡 콜렉티브는 ‘릴레이 글쓰기’를 시도했습니다! ‘릴레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으시죠? 간략하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주자가 단어를 제시하여 두 번째 주자에게 전달합니다. 두 번째 주자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작품을 세 번째 주자에게 전달합니다. 세 번째 주자는 작품을 보고 에세이를 쓰고, 이를 네 번째 주자에게 보여줍니다. 네 번째 주자는 작품과 에세이를 참고하여, 첫 번째 주자가 제시한 단어를 유추합니다. 간단하게 ‘단어-작품-글-추측’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3호의 첫 번째 메일에 수록된 「검색해보니 일기도 에세이라고 하더라」는, '강리 – 현지 – 수연 – 아현'의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리가 제시한 단어를 보고 현지가 고른 작품에 대하여 수연이 쓴 에세이를 읽고 아현이 추측하는 과정을 함께 쫓아가봅시다!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아니, 그렇게 자꾸 쳐다보시면… 흥미로운 글쓰기를 시작했다. A가 단어를 제시하면 B가 작품을 찾는다. C는 그에 관한 글을 에세이로 쓴다. D는 C가 쓴 글을 보고 A가 처음 제시한 단어를 맞히게 될 것이다. 이번에 나는 C의 역할을 맡았다. 전적으로 앞 사람의 결정에 따른 글쓰기다. 작품이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아도 일단 써야 한다. 솔직히 글과 작품만을 보고 이루어진 온갖 추측의 결과가 한 단어에 귀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재밌으면 됐지, 뭐. 답을 맞히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 번 추측해보자면, ‘응시, 표정, 얼굴, 시선…’ 정도. 그건 그렇고, 그렇게 자꾸 쳐다보시면 부담스러워요. 등장인물의 ‘빤한’ 시선이 부담스럽다. 글을 쓰려면, 작품을 오래도록 보아야 하는데······.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에 따라 감상하기 마련인데, 내 사정을 대입해 표현하자면 一 작품에 묘사된 등장인물의 눈이 글을 쓰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이 나지 않으므로 패스. 오늘의 반성 : 글을 못 썼다. 아니 안 썼ㄷ… 내일의 계획 : 얼리버드가 되겠다. (대충 일찍 일어나겠다는 소리) 2021년 4월 4일 일요일 결국 저 눈이 문제야 3시간째. 그냥 보고만 있다. 여전히 올곧은 눈빛이다.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저 시선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 장면을 회고한다. 분명히 작품에 시선을 두고 분석하는 주체는 나다. 그런데 정이지의 〈Season of Fig 3〉는 나를 분석하려 든다. 응시의 대상이 된 나는 끊임없이 분열된다. 살짝 옆으로 튼 얼굴로 감상자를 곧게 바라보는 시선에 미간이 뚫린다. 一 아릿하다. 시선은 미간의 표피를 통과해 회백색 대뇌겉질(두께 2~4mm 정도의 얇은 살점에 불과하지만 기억, 언어 등 인간 활동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부위)에 도달한다. 자극을 받은 뇌에서 기억이 피어오른다. 기억은 잠시 뒤로 하고 임무로 돌아가자. 무채색 계열의 냉랭한 색채를, 단숨에 그려낸 것 같은 붓질을, 화면을 꽉 채운 얼굴을, 여백을 통해 무언가를 알아내려 애쓴다. 다시 1시간 경과, 마침내 깨닫는다. 그토록 아니라고 하고 뒤로 했던 ‘떠오르는 기억’이 이 작품의 속성이구나. 오늘의 반성 : 얼리버드는커녕 평소보다 늦게 일어남. 어쩐지 일어날 때 상쾌하더라... 내일의 계획 : 내 ‘열정적인’ 타자 탓에 노트북 자판이 빠졌다…ㅎ 수리하러 가야지… (LG서비스센터 16:30 중요★★★) 2021년 4월 6일 화요일 진실만을 답해야 할 것 같은 올곧은 눈이다 경험과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과거로 전환된다. 다양한 감정, 관계, 장소, 물건 등은 점차 잊히고 소멸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지나친 것은 간헐적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망각으로 남기도 한다. 정이지는 자신의 삶 속 가까이에서 느끼고, 보았던 중요한 순간을 캔버스에 기록한다. 이러한 행위는 순간들이 단순히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왜곡될 가능성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감상자는 과거를 재경험하며 현재의 자신을 본다. 일상의 기억에 관해 정이지는 “그런 장면들이 물리적인 몸을 가진 회화가 되어 오래도록 남아 그 시간을 함께한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비슷한 기억까지도 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한다. 정이지가 표현하는 일상은 우리의 기억과 맞물려 중요한 순간이 된다. 우리는 중요한 순간을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의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기억의 저편에서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정이지의 방식은 눈 맞춤이다. 〈Season of Fig 3〉에서 인물의 시선은 그림을 보는 감상자를 향한다. 눈이 휜 정도, 팔자주름, 눈가주름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표정이다. 눈빛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담담하지만, 살짝 벌어진 입을 보아서는 곧 말을 꺼낼 것 같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진실만을 답해야 할 것 같은 올곧은 눈이다. 一 그러고 싶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알던 사이 같다. 오늘의 반성 : 원고 마감일. 그러나 마감한 듯 안 한 듯 애매한 완성도 내일의 계획 :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이 오기 전 마지막 주말을 실컷 즐기자!! 2021년 4월 7일 수요일 그날의 ‘나’를 기억함으로써 작품은 순간과 기억을 캔버스에 고정할 뿐일까? 낯익지 않은 순간과 기억도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면 쉽게 흩어지기에 정이지는 의식하지 않으면 잊어버릴지도 모를 장면을 그린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경험했던 그림을 닮은 기억이 떠오르고 그들과 내 감정은 다분히 연결된다. 바다에 잠긴 듯 냉담한 색조에, 진실을 요구하고 어쩌면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눈빛에 잊을 뻔했던 사건을 떠올린다. 잊어서는 안 되는 한 장면이 중요한 대상으로 기록되면서 과거의 시간은 다른 의미를 품고 되살아난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버스. 3일 간의 여행은 피곤했기에 한두 명을 빼고는 모두 곤히 잠든 상태. 버스 앞쪽에서 백색소음처럼 흘러나오던 뉴스 소리에 나도 잠이 들던 참. 그리고 속보. 잠이 달아났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니 온가족이 재난 영화라도 보듯, 침몰하는 배를 보고 있었다. 버스에서 보았을 때보다 구조자가 줄어들었다. 그건 오보였구나.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둘씩 구조되는 장면을 보고, 친구들과 카톡하면서 이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는 무책임한 선장을 질타하고 실책의 원인을 파악하는 뉴스를 보았다. 그렇게 3일, 5일, 1주, 2주. 대국민 사과를 ‘보았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시청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Season of Fig 3〉에서 진실을 답해야 할 것만 같은 눈빛으로 나를 괴롭게 한 인물은 나였을지도. 그날의 내가 작품이 되어 지금의 나를 본다. 지금의 나는 ‘나(작품)’를 통해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과거의 사건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현재는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온다. 기억한 후에 보니 피하려고 했던 이 순간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 된다. 작품에 기록된 순간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기억은 현재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하고, 다가올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한다. 오늘의 반성 :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내일의 계획 : 내가 어떤 상태이든 세상은 흘러간다. 정신 바짝 차리자! 💁 강리 (단어) 저는 메일링 서비스의 마지막 편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반복해서 함께 하는 동료의 글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유달리 반복되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기대(expectation)'였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골랐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나요? 그리고 무엇이 그 기대를 좌절시키나요? 그럼에도 그 기대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제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의식의 흐름을 세세하게 따라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주변의 즐거움을 살필 수 있는 4월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 현지 (작품) 저는 사실 작품을 고심해서 고르지 않았습니다. 강리에게 ‘기대’라는 단어를 받고, 제가 어떤 일을 기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을 가졌죠. 단어에 어울리는 작품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작품을 골라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사이트에 들어가 작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속 수많은 작품 중 정이지 작가의 〈Season of Fig 3〉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 눈빛 속에서 무언가 희망 찬 기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수연이 작품 속에서 어떤 감정을 보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전달했습니다. 🌻 수연(쓰기) 현지가 고심 끝에 골랐을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강리’가 제시한 단어가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답이 대충 예상되네. 응시, 시선… 뭐 이런 느낌 아닐까?’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쓰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하루에 5시간 이상 보며 (제 역할이 아님에도) 감상과 추측 사이에서 줄을 탔습니다. 저는 끝까지 응시라고 생각했지만, ‘기대’라는 답을 들었을 때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4월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파도가 휘몰아치는 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고가 아무리 높아도, 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저는 마냥 휩쓸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친구와 가족, 글을 읽는 모든 분이 평안하고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 아현(추측) 수연의 글을 보고 제가 생각한 단어는 시선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정답은 기대였습니다. 4월은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안겨주는 달입니다. 제 생일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봄이 찾아오는 계절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봄의 기운이 반기는 4월은 끔찍한 역사와 기억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푸르름과 따스함이 있는 4월. 어디선가 들이닥친 소나기와 추위를 지내면서 매서운 바람 같은 고통을 겪었던 그들을 위해 짧은 묵념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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