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을 허락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목차 1. Holding Point_강리 2. 작품에 드리운 마음의 그림자를 따라서_수연 3. 운명보다 가까운 만남_현지 4. 문을 두드리며_강리 5. 죽음 속에서 삶을 선택하다_아현 6. 살아남아라, 예대생!(1)_알렉시스 7. 후기 반갑습니다, 땡땡 콜렉티브의 기획자로서 첫 인사말을 건넵니다. 지난 2020년 12월, 저는 다소 충동적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함께 미술 비평 연습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운이 좋게도 꽤나 많은 연락을 받았고, 그 중 세 사람과 땡땡 콜렉티브를 꾸렸습니다. 수요일 저녁마다 예술이론과 비평에 관하여 함께 읽고 서로의 글쓰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담장 바깥에서는 땡땡 콜렉티브의 활동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소셜 계정을 개설하고,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땡땡 콜렉티브는 지금 소통을 기반으로 한 열린 공동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메일링 서비스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미술과 텍스트를 매개로 한 관계 맺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에 걸맞게 창간호에는 네 사람이 각자 미술 혹은 미술계와 관계 맺게 된 사정에 관하여 쓴 에세이를 수록하였습니다. 네 편의 에세이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각자에 대한 소개이기도 하지만, 땡땡 콜렉티브가 앞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땡땡 콜렉티브는 '땡땡'으로 비워진 자리를 함께 채워나가는 과정을 경계 없는 글쓰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땡땡 콜렉티브의 이름은 빈 칸을 가르켜 '땡땡'이라고 부르는 언어습관에서 출발했습니다. 아직 '땡땡'에 무엇이 자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막연하게 어떤 주제나 관점, 대상이 될 것이라 추측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길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땡땡'의 가능성에 기대어 길어올린 사유가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하였듯, 누군가의 필요에도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땡땡 콜렉티브는 홀딩 포인트에 있습니다. ‘홀딩 포인트(Holding Point)’는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받기 전 활주로에서 대기하는 순간을 이르는 항공 용어입니다. 땡땡 콜렉티브는 지금 여기에서 구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관제탑 삼아 새로운 국면으로 출발하려 합니다. 동행을 허락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Enjoy Your Flight! 요즘은 어딜 가든 미술관, 박물관이 생기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가길래 계속 만드는 걸까요? ‘우아하고 고상하다고’ 평가받는 예술은 팍팍한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도 바쁜데 시간을 쪼개어가며 굳이 예술 작품을 감상해야 할까요? 적어도 저는 예술 감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끝에 이루어 낸 융화의 조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위대한 천재’라고 불리는 예술가들의 고뇌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저 삶이 녹록지 않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미술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완전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작업했으나 갖은 오해와 비난으로 힘겨워한 빈센트 반 고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모두가 그러듯 죽을 만큼 괴로워한 잔 에뷔테른, 평생을 트라우마와 싸우느라 고군분투하기도 한 프리다 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천재’들 또한 세상을 살아가며 목격하는 수많은 장면 속에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작품과 제 삶이 겹쳐 보일 때, 세상에 느꼈던 불화의 감정은 어느 순간 해소되었습니다. 거창한 응원이나 조언보다, 작품을 감상하며 저와 비슷한 개인으로부터 받는 위로가 더 컸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설치 작품에서 어머니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생애와 작품을 대조하며 관계에서의 거리감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이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예술은 때로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게 합니다. 독일 출신의 예술 및 영화 이론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저서 『미술과 시지각(Art and Visual Perception)』에서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일이고 한 작품에서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림이나 조각이 단지 ‘옮겨놓은 스크린’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관람자는 그 스크린에 자기 마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유년 시절 미술 학원에서 생긴 집착으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알록달록’이라는 형식적 요소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아무도 시킨 적 없음에도 모든 칸에 서로 다른 색을 칠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것이 사람이어도 선으로 나뉜 각 면은 모두 다른 색으로 칠해야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알록달록’¹에 집착한 이유는 그 시절, 제가 바라본 세상은 흑과 백에 들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게 알록달록한 그림은 다양한 색채의 사람이 모두 인정받고 어우러지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자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도피처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에 마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오해나 미숙한 해석을 반복할지라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오롯이 자기 자신과 관계 맺기에 의미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어떤 여가와 인간관계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찌뿌둥함은 예술만이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의 삶에는 어떤 갈증이 있나요? 당신은 어떤 싸움을 하고, 또 어떤 화해를 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작품에 드리운 마음의 그림자를 따라, 마음에 응어리진 이전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경험합시다. ¹ ‘알로록달로록’의 준말. 여러 가지 밝은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조금 성기고 고르지 아니하게 무늬를 이룬 모양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예술 작품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작품을 통해 작품 속 인물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저는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사춘기〉(1894~1895)를 보며 제 자신을 비추어 보았던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은 필기구와 책들이 어질러져 있는 책상 위, 방구석에 펼쳐진, 이은기·김미정의 『서양미술사』 436쪽이었습니다. 분명 낭만적인 곳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뭉크의 〈사춘기〉 속 어린 소녀는 딱딱해 보이는 침대에 어딘가 불편한 듯 경직된 자세로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웅크린 채 양손을 포개며 몸을 슬며시 가리고 있습니다. 그 뒤로 소녀의 오른편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기이한 모양으로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형태 같습니다. 마치 소녀의 몸에서 삐져나온 두려운 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또한 거친 붓 터치와 중후한 느낌의 색감은 사춘기를 맞아 여러 변화를 마주친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한층 두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시선을 붙잡은 것은 소녀의 눈과 미묘한 표정이었습니다. 소녀의 눈동자 속에는 걱정, 당황, 다부진 다짐 그리고 싱숭생숭함이 한대 뒤엉켜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을 때 제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당황, 그럼에도 끝까지 해내 보겠다는 다부진 결심과 어쨌든 새로운 시작이 가져다주는 두근거림과 어수선한 마음을 소녀의 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아무 기대 없이 펼친 책 속의 작품에 제가 빠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 속 SNS, 책 등에서 쉽게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술작품에 나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순간도 항상 열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감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속 깊이 묻혀있는 취향과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감상에는 답이나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작품은 내가 공감할 수 있고, 작품과 나를 연결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연극 〈비평가〉(이영석 연출, 2018)는 ‘연극을 연극답게 하는 보다 연극적인 것’에 대해 묻는 메타-연극이다. 성공을 거머쥔 젊은 극작가 스카르파가 비평가 볼로디아의 현관문을 두드리며 시작하는 이 연극은, 비평과 작품이 옥신각신하는 몇몇 순간을 보여준다. 스카르파가 볼로디아에게 자신의 희곡을 제대로 읽어달라고 요청하거나, 볼로디아가 혹평을 철회하지 않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게다가 볼로디아의 평론이 스카르파를 향한 편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스카르파는 전범(典範)으로 삼았던 볼로디아의 언어를 딛고 일어나 결국에는 자신만의 언어로 연극을 끝맺기까지 한다.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에서 평론은 작품이 발전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평론은 작품을 위해 존재하는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비평은 언제나 대상을 필요로 하니까. 하지만 평론은 독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글이다. 비평은 대체로 대상에 대한 기술, 맥락화, 이론적 해석, 평가를 포함한다. 즉 ‘작품에서 무엇을 감지하였고, 그와 관련한 무엇을 떠올렸으며, 그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고, 무엇을 기준 삼아 평할 것인지’에서 무엇의 자리를 채우는 일이다. 이 작업의 핵심은 ‘무엇’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에 있다. 그래서 평론은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없으며, 독자의 사유 속에서 완성된다. 나는 시를 직접 쓰지도 않고, 국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국 시인의 시집에서 권말비평을 즐겨 읽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도 하지만 다툼을 할 때도 많다. 비평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동안, 내가 시와 맺는 관계의 형태를 더듬어 본다. 나의 관점과 태도를 점검하며 정신의 외피를 보듬기도 한다. 결국 나는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 평론을 읽는다. 그리고 평론은 어려운 이론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스스로 해명할 수 없는 욕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나는 스스로 해명할 수 없는 욕망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메갈리아 세대의 페미니스트이자 비규범적 욕망을 말하는 퀴어이자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평론을 쓰는 일에도 매력을 느낀다. 비평은 어찌되었던 간에 선택된 대상이 다른 대상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도록 무게를 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고무판과 쇠공을 사용한다. 얇은 고무판 위에 무거운 쇠공을 놓으면 휘듯이 질량이 있는 물체는 공간을 휘어 중력을 발생한다는 시각적 비유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비유는 무거운 별 주변의 물체가 움직이고 변형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비평이 대상에 무게를 더하는 일이라면, 주변을 움직이고 변형하는 힘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여기에서 비평의 중력을 소수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여성, 그리고 정상성을 탈각한 괴상한 욕망과 존엄한 비인간의 삶에 기대어 비평하는 세계에서 살겠다. 문득 연극 〈비평가〉의 대사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연극에 관한 작품은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한테만 재미있어요.” 아마 비평에 관한 이 글도 비평을 쓰는 사람들한테나 재밌을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당신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는 비평의 독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아니면 볼로디아 같은 영향력 있는 비평가가 되어도 좋겠다.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을 영화화한 〈디 아워스 (The Hours)〉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비춘다. 원작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각색한 것에서 출발한 만큼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조망한다. 특히 그가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2001년 뉴욕의 클라리사 본이 겪은 비극은 불행한 어린 시절에서 시작된 우울감을 절감하게 만든다. 1941년, 1951년, 2001년 이 세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부정당한 존재의 발자취이다. 오롯이 한 사람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사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대부터 그 차별의 눈초리가 미묘하고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변모한 시대까지, 그들은 경계 위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하고자 했다. 이는 탄디아 페르마디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활동하는 사진 작가 탄디아 페르마디는 젠더 역할과 개인 경험 간의 충돌과 혼란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첫째 아이가 아들일 경우 불행의 징조’라고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미신으로 인해 장남 페르마디는 ‘여성적’ 모델을 강요받은 유년기를 겪은 후 사회적으로 정해진 남성으로서의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모순을 느꼈다. 비록 모순적인 어린 시절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테지만, 그 시간조차 탄디아 페르마디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냈다. 탄디아 페르마디는 ‘경계 위에 선 존재’로서 자신을 향한 차별과 경계가 선명해지자,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여성과 남성, 두 젠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페르마디는 젠더를 구분짓는 경계를 지우는 순간 지워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자화상 #7〉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코드화하여 ‘여성적’ 기호를 입는다. 하의 없이 긴 상의와 인도네시아 전통의상 중 하나인 질밥을 연상시키는 머릿수건을 착용함으로써 유년기부터 고착된 자아를 드러낸다. 〈자화상〉 연작은 ‘여성인 자아’를 체현하며 고뇌에 빠지고 피폐해지며 우울감에 빠지는 작가를 묘사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아기 인형을 포착한 장면부터 TV 앞에 앉아 담배를 손에 쥐고 멍하니 TV를 보거나 하품을 하는 장면까지. 극적인 사건이 없는 사진들은 작가의 일상 장면에 담긴 외로움, 쓸쓸함, 허망함을 함축한다. 그러나 서사는 곧 그 기호들을 벗는다. 반 바지를 입은 몸으로 침대 위에 뛰어드는 장면과 신체의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을 통해 〈자화상〉 연작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고뇌와 혼돈, 우울감이 가득했던 연작의 분위기는 침대에 뛰어드는 페르마디의 모습으로 환기된다. 그간의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고 힘껏 공중에 떠오른 작가의 모습은 자유와 희망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어떠한 기호도 걸치지 않은 나체의 형상을 통해 자유를 소망한다. 우리는 작가가 어떤 젠더를 선택했는지, 혹은 선택 외의 다른 방법을 택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 이분화된 젠더 모두를 수행하며 반기를 드는 모습은 성별의 다양성을 제기한다. 〈자화상〉이라는 보편적이고 진부한 제목은 쉽게 용인될 수 없고 퀴어(queer)한 서사를 한 명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자아에 대한 탐구를 가리키는 ‘자화상’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긴밀한 관계성을 실험한다. 두 개의 범주가 아닌 많은 범주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꾸릴 수 있고, 어느 누구도 부정되지 않고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곳에서는 외적인 모습과 미적 기준에 관한 편견과 차별이 없으리라 믿는다. 다양성이라는 논의가, 말이, 단어가 진부해진 세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즉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거부하고 지운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 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더 쉬운 방법이라 여기게 된다. 인간은 무릇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곳에서는 존재가치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인생이라는 과제가 버거울 때가 많았다. 이성애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정한 기준은 나를 ‘조폭 마누라’, ‘뚱뚱한 아이’, ‘다리털 있는 여자’, ‘못생긴 여자’ 등등으로 명명하고 억압했으며 갖은 모욕과 차별을 받도록 방치했다. 그럴 때마다 사회를 탓하는 것보다 자신을 혐오하고 채찍질하는 일이 더 쉬워서 곧잘 자기혐오를 했었다. 자신을 혐오하는 행동은 늘 죽음을 소개했지만, 죽는 것이 두려워 차마 죽지 못했었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 로라 브라운이 가족으로부터 도망친 이유로 “죽음 속에서 전 삶을 선택했어요”라 답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의 끝에서 사회가 잘못 되었다고, 나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받았다. 나는 꿈꾼다. 나와 수 많은 소수자들이, 특히 로라 브라운같은 사람들이 말했던 죽음과도 같았던 삶이 더 이상은 되풀이 되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비합리적인 차별과 억압이 해소될 순간이 당장 내일이길 바란다.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며 온전한 일생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낮일까, 밤일까? 중학교 2학년, 미술책에서 접한 질문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에 관한 이 질문은 예술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질문을 접하고나서 당연하게 낮이라 생각했던 그림 속 배경이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어졌다. 이 그림을 시작으로 르네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를 탐구했고, 결국은 예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큐레이터학과에 편입했다. 드디어 졸업생이 된 2021년, 그렇게 나는 취준생이 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취준생이 되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거나 취업 준비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는 등 ‘나 취준생이에요. 건들지 마세요!’라고 알리고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취준생이 되어보니 내가 경험했던 대학 입시와 같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목표를 향해가는 수 많은 경쟁자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뛰어난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여러 시험과 자기소개서 작성이 상위권의 내신과 수능 성적, 화려한 자기소개서로 치환된 것 같았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요구사항 가운데에서 ‘완벽’하기란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그들이 요구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면, 학예사가 아니라더라도 어디에서든 남부럽지 않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취준생들 즉,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이 정확히 취업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의 사정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한다. 예술대학 혹은 미술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예술인으로서 활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기관에 취직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고 암담하다. 예를 들어, 어느 미술관의 학예사로 취직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경력과 학위를 요구할 것이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인턴이나 예비학예인력이 되어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등에서 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준학예사 자격증 필기시험 합격증, 공모전 활동, 외국어 자격증, 디자인 툴을 다루는 능력,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일했던 경험, 그리고 예술 관련 학위 따위가 필요하다. (게다가 학예사의 자리는 암묵적으로 석사 학위를 요구한다.) 심지어 이러한 요건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짐작이 되는가? 얼마나 악독한지? 그렇다고 학예사나 큐레이터가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도 아니다. 고학력에 박봉. 어쩌면 모든 전시기획자 특히 현대미술 전시기획자들은 “성채”에 산다는 존 버거의 글이 아직까지도 유효할런지도 모른다. 미술관 지붕 아래 예술작품을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특권이 엄중한 공적 책임으로서 자신들에게 맡겨졌다는 자부심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술계 말이다. 어쩌면 그 미술계의 공적을 보며 감탄하고, 그 미술계가 일하는 모습에 반해 이 길을 선택한 내가 더 모순적이겠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로운 기로에 놓았냐고 묻는다면, 한 전시가 떠오른다.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그 전시를 본 날의 날씨와 옷차림, 동행인의 반응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무렵의 나는 영화과 진학을 준비하다가 반복되는 불합격과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예술계에 발 딛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러한 와중에도 전시는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나를 매료시켰다. 그 날은 감사하게 여긴다. 그 전시를 봤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했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여 큐레이터학과의 졸업생이 되었으며, 지금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여기저기 밟히며 꿈틀대고 있다. 나는 지금 예술기관 어디에도 속하고 있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도 꽤 많은 곳에 인턴과 예비학예인력, 전시운영 스탭 지원서를 넣었지만 아직 합격 메시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어디에 놓아야 할 지 모르던 때에 ‘이곳이 네가 있을 곳’이라고 인사해준 ‘그 전시’를 만났기 때문에, 마침내 이곳에 정착하고자 한다. 예술계가 나를 외면하고 무시하더라도, 나는 그 이상을 바라보겠다. 💁 강리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땡땡 콜렉티브를 재정비하고 방향성에 관하여 논의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에세이의 첫 문장을 서른 번도 넘게 다시 쓰며 글쓰기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은 지난했지만요. 이제는 제가 만든 생각덩어리가, 한겨울에 눈사람을 만들 듯이, 독자의 손을 거치며 불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바람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수연 창간호에는 우리가 “예술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써보았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한없이 깊고 먼 과거로 갈 수도 있는 주제라 처음에는 어깨에 우리 문화예술계 전체를 짊어진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마다 예술을 읽고 쓰는 방식과 계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글이 술술 써졌습니다. 그게 바로 ‘알록달록’에 관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생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구독자분들에게 꺼내고 보니 알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네요.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땡땡 콜렉티브의 여정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 아현 저는 이 시작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하고, 모두가 끊임없이 외쳐온 주장을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원래 이 글은 오래 전 메일링 서비스가 생기기 전에 작성되었습니다. 사적인 감정만이 유일했던 이 글이 쓸모있어진 것은 며칠 전 접한 비보 때문입니다. 셀 수 없는 죽음 위에 쓰여진 이 글이 새로운 죽음을 맞이하길 원치 않았습니다. 전 앞으로도 다짐했던 대로 어느 누구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큰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입 대신 손가락으로 내뱉어진 이 말들이 구독자 여러분께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시리라 기대합니다. 👻 현지 글을 쓰며 몇 번이나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쳐나온 곳에는 ‘아직 못 다한 말’과 ‘글쓰기 빼고는 다 재미있어!’가 저를 기다리더군요. 방황하다가 돌아와 보니, 아쉬움 하나와 새로움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흔적들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후기에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 작품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피드백을 통해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답변 기다리고 있을께요. 🏂 알렉시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궁금해 하실 ‘그 전시’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2018년에 했었던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LIFE, LIFE》 입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전시라고 할수는 없지만, 음악을 온전히 전시장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점, 음악이 어떻게 조형예술 작품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점,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사람과 피크닉이라는 공간의 조화가 절묘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솔직하게 이 시리즈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간이 나오는 ‘살아남아라 예대생!’의 소식이 ‘살아남아라 인턴/예비학예인력!’, ‘살아남았다 예대생!’이 되는 순간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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