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전시를 리뷰합니다! 오늘은 5월 14일까지 아트스페이스호화에서 진행하는 전시 《Deep Layer》에 관해 수연이 리뷰합니다. 전시는 푸른 계열의 색조로 구성된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개하는데요. 수연은 이들을 바다라는 광활한 공간으로 가져와, 소설 형식으로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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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를 시작한 지 반년, 오늘은 기어코 심해에 다다르고 말겠다 결심한다. 어쩐지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다. 저명한 잠수공의 후기에 의하면 이곳으로부터 약 5km 아래에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만나러 간다. 내리쬐는 햇살이 깊은 어둠 속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뻗길 바란다. 깜깜한 어둠에서 나와 그것이 서로만을 알아보며 교감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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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리는 어수선함에 고개를 돌린다. 한 무리가 열심히 배를 이고 간다. 눈도, 귀도 가린 채 앞은 보이는 건지. “어디를 그렇게 가세요?” “바다를 건너 신께 가려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들이 이고 있는 건 돛단배도 아니고 종이배다. 그걸 타고 가면 당신네가 원하는 곳까지 가기 전에 가라앉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지만, 이들의 눈빛이 퍽 단호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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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믿고 그렇게 가세요?” “신을 믿으세요!” 큰일이다. 지금 뛰어들어야 오늘 안에 심해에 다다를 수 있을 텐데. “그러는 당신은 바다로 뛰어들려고요?” “네, 심해에 가려고요.” 그래, 난 꼭 심해에 가야 해. “거기 가봤자 아무것도 없어요. 와서 배 옮기는 일이나 도와주세요. 다 같이 저 위로 가야 해요.” “아, 아니요. 저는 아래로 갈게요.” 기분이 안 좋았다. 왜 당신들 믿음을 내게 강요하는지. 당신들이야말로 저편으로 가봤자 끝없는 대양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들릴 리 만무하여 입을 닫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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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도 할 겸 기지개를 켠다. 선명한 햇빛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눈은 곧바로 새파란 초원을 인식했다. 바다에 이는 새파란 물결은 자기들끼리 부딪히면 이상하게 새하얘진다. 순간적인 충돌로 자신의 색을 잃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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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바다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대체로 그 속이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바닷속 생명은 물보라를 일으켜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해준다. 단 한 번이지만 여러 방향이 겹친 움직임은 당당한 동시에 바듯하기도 하다. 파도는 얕고 빠르게 이동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서히 밀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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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스 파파코스타스(Kostas Papakostas), 〈Secrets of the Sea #10〉, 2023, 린넨에 아크릴, 90×120cm. (이미지 제공: 최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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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뛰어들 준비를 한다. 잠깐 쭈그려 앉아 속을 들여다본다. 제약 없이 쏘다닐 수 있는 수면 위를 두고, 난 왜 갑갑한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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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머리가 식으니 눈앞이 오히려 생생하다. 차분히 주위를 둘러본다. 수면 위에서는 어렴풋 보였던 무채색의 것들이 제대로 보인다. 이것 때문인가 보다. 편히 숨 쉴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육지의 장점을 금시에 보잘것없이 만드는, 바다의 자유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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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내려 대대로 자라오거나 울타리를 높게 쳐 자기 영토를 주장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물 밖으로 꺼내지면 박제된 동물처럼 굳어버리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방 안에서만큼은 물살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거나 물살에 저항해 거슬러 갈 수 있다. 난 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간이지만, 우연한 만남들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이들 사이에 낄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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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더 깊은 곳으로 잠겨 들어갔다. 주변이 온통 깜깜해 라이트를 켰다. 항해를 시작한 지 반년, 오늘 마침내 심해에 다다랐다. 지금이 여전히 오늘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물살이랄 게 없어 겨우 있는 생명체는 굳이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곳의 흐름대로 움직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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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맹목적인 이유로 심해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 돌이켜보니 어느 저명한 잠수공의 후기 때문이다. 이곳에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때마침 저 멀리서 동그란 빛이 안개처럼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이 후광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빛이 감싸고 있는 존재는 미끌거리는 바닷물과는 정반대의, 그렇다고 해서 거칠거칠한 정도는 아니고 곱다는 느낌에 가까운 질감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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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우, 〈Kanon02〉, 2019, 레진에 분체, 좌대, 40×35×65cm. (이미지 제공: 최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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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휘감고 있던 물살이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리고 물살의 흐름이 아닌, 바람이라고 일컫는 공기의 흐름을 느낀다. 심해 탐험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아까 신께 간다고 했던 무리가 찾던 것을 내가 본 모양이다. 그 사람들은 저편으로 도달했을까, 아니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까. 어쩌면 내려앉은 후 그들은 목표를 달성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저명한 잠수공의 후기만 믿고 덜컥 아래로 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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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분에 바다를 관찰할 수 있었다. 저편에 도달하기/신비한 무언가를 만나기 위한 여정에서 마주친 네 가지 현상은 분명히 기이했지만 새로웠고, 깜깜하면서도 푸르렀다. 비록 바다의 논리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돌아와 버렸지만, 이곳에서도 바다의 횡적 움직임과 자유로움을 재현하고자 노력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푸른 바다를 다시 한번 항해할 때 마주하기를 바라며,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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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생물에 관심이 있다 보니, 바다의 공간성에 관해 자주 생각합니다. 애초에 바다라는 광막한 지대를 공간으로 한정지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공간’이라는 단어에서 ‘공’은 ‘텅 비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무궁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바다라는 장소야말로, 공간과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석을 덧붙이면 사족이 될까 봐 염려스럽긴 한데, 각 숫자가 붙은 문단과 사진을 함께 보면 조금 더 친절한 글이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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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은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만의 이상적인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에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탑을 올라가는 내용을 다 읽고 나면, 그와 수연의 글에 등장한 잠수공이 찾으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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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 4월 4주차
발행인: 땡땡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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