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전시를 살펴봅니다! 도무지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와 거듭 기록을 갱신하는 무더위 앞에서, 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지구가 들끓는(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인류세가 기후재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요즘, 미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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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마철 집중 호우와 태풍으로 발생지 미상의 해양쓰레기가 무더기로 밀려왔다. 파도가 모래사장과 만나 지그재그로 흔적을 남기듯, 약 7,626t의 쓰레기가 파도의 흔적 그대로 궤적을 남겼다. 그간 쓰레기로 치부하며 삶의 반경에서 밀어내고 외면했던 것이 조류를 타고 고스란히 우리에게 온 것이다. 각지에서 정화 활동을 벌이며 대부분은 더 이상 눈에 안 보일 테지만, 미처 눈에 띄지 못한 쓰레기는 그렇게 터를 잡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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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작가는 터를 잡은 쓰레기를 수집한다. 터를 잡는다는 건 인간이 살아갈 장소나 위치를 정한다는 주체적 의미가 함의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기에 한낱 쓰레기일 뿐인 사물에는 터를 잡는다는 말이, 곧 그곳에 적응하고 동화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장한나가 주운 쓰레기는 사실상 돌에 가깝다.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들어서 돌이라고 칭한 게 아니고, 실제로 흙 따위가 굳어서 만들어진 지구의 돌처럼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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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한강에서 주운 뉴 락〉, 2022 (이미지 제공: 최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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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는 자신이 채집한 것을 ‘뉴 락(New Rock)’이라고 이름 붙였다. 뉴 락은 “자연의 일부가 된 플라스틱, 즉 풍화작용에 의해 암석화된 플라스틱을 지칭”¹한다. 그간 작가는 여러 장소에서 뉴 락을 전시하며 지구에 이런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비수도권에서 열린 이번 《뉴 락》(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023)에서, 장한나는 관습적 생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록을 제작하지 않고, 가벽과 좌대는 이전 전시의 것을 사용했으며 벽 글은 모두 손으로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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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신생태계〉 (이미지 제공: 최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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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뉴 락의 원료인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다. 장한나는 뉴 락의 생성 과정을 벽에 쓰고, 그 원료인 합성고분자로 이루어진 우리 주변 사물을 모빌처럼 이어서 천장에 걸었다. 두 번째는 뉴 락 수집 현장이다. 작가는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겉으로 ‘완벽한’ 돌처럼 보이는 뉴 락을 반으로 갈라 스티로폼이 그대로 보존된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은 뉴 락의 가능성이다. 실제 생태 공간을 꾸리기 위해 수조에 담긴 뉴 락과 실제로 뉴 락에 적응한 자연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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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뉴 락 연구 결과 보고라고 할 만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로 표현된 뉴 락의 생태를 볼 수 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동시대 미술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고고학적 탐사”라고 칭한다. 즉 고고학이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적 자료나 유적을 발굴하고 조사하여 과거의 문화를 재구성하듯, 동시대 미술이 수행하는 고고학적 탐사는 오늘날 인류가 내다 버린 쓰레기를 실시간으로 발굴하고 그 유물/폐기물에 담긴 현재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다.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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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인천에서 수집한 뉴 락에 서식하는 개미〉, 2023 (이미지 제공: 최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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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한나가 제시하는 뉴 락은 혐오와 거북함의 대상이기보다는 경악이 섞인 슬픔과, 경이로움이 깃든 매료가 공존하는 이질적인 혼성체다. 쓰레기가 섞였는지 모르고 보면 해변에서 예쁜 돌을 주워서 전시한 걸로 착각할 정도다. 또한, 이 전시에서 장한나는 ‘그래서 이 플라스틱은 나쁜 것이다’라고 가치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뉴 락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그는 작업을 통해 “친환경 혹은 쓰레기 문제를 훈계”하는 대신 보는 이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길” 원한다.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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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플라스틱을 멀리할 수 없다. 지금도 뉴 락에 서식하는 모기 유충 혹은 플랑크톤은 작은 물고기에게 먹히고,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에게 먹히고, 큰 물고기는 인간에게 먹힌다. “우리는 이상한 생명 형태를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한다”라는 데이비스의 말처럼, 플라스틱은 생명 시스템에 위협을 가하면서 동시에 기이한 방식으로 함께한다.⁴ 교훈적 메시지를 최대한 덜어낸 채, 관람객에게 뉴 락이 발산하는 기이함 혹은 감각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장한나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반드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작가는 새롭게 등장한 사물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며, 열린 의미를 숙고하기를 제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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² 정은영, 「버려진 것들의 귀환: 동시대 미술의 이질학적 전략과 그 확장」, 『현대미술사연구』 53 (2023): 57.
⁴ 백승한, 「플라스틱 어버니즘: 인류세, 어셈블리지, 그리고 도시」, 『美學·藝術學硏究』 63 (2021):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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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흔적이 만든 ‘어딘가 기이한 생태계’ 를 들여다보면서, 문득 곤충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리는 이아현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인간-동물의 외부에서 지구를 돌아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상식 바깥에서 세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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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작가의 작업에서 개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영화 〈방랑견(犬)문록〉에서는 떠돌이 개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번화가와 도시 골목 안쪽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개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그들의 시선을 통해 도시에서 외면받는 타자로 ‘살아남는’ 법에 관해 알 수 있죠. 귀여운 개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동물들과 도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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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하수구에서 흐르는 물은 결국 바다까지 닿을 것이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 역시 그렇다. 강한나 작가는 과거부터 켜켜이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생물의 터전을 바꿔 놓은 것을 주목했다면, 《고래 고래 둥둥 고래 둥둥》에서는 현재에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아기 고래의 경험을 함께 하고자 한다. 강한나 작업에서 ‘뉴 락’을 통해 생명체 군집이 일궈낸 일종의 진화를 목격했다면, 《고래 고래 둥둥 고래 둥둥》에서는 오염된 바다 안에서 발버둥치고 최선의 움직임을 모색하고 있을 개별적인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들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서글픔이 어떻게 작업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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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 7월 4주차
발행인: 땡땡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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