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아현은 일우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인 전시 《사유의 베일 (Veil of Thought)》(2022.02.23. ~ 05.06.)에서 감상한 최지원 작가의 작품을 사람의 심리에 기대어 분석합니다. 최지원 작가는 사람의 외연을 닮은 도자 인형을 대상으로 사회 군상과 내면을 표현합니다. 작품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고, 아현은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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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보면 사진이나 동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웃고 있다. 이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한편은 아주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동정을 표하는 순간을 게시한다. 이렇듯 우리는 SNS를 통해 개인적인 감정과 삶을 공유한다. 하지만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특히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편집하고 꾸며 보여준다. 마치 이곳(SNS)에는 행복과 슬픔 등 극단적인 감정만 존재하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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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오직 두 가지 감정만 가지고 있었다. 기쁨과 슬픔. 거의 모든 장난감은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행복한 감정만 담고 있다.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은 커서 행복해지는 것을 강요받고, 돈과 명예를 가지는 것만이 행복을 위한 조건이라 세뇌하게 된다.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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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인형을 피사체로 설정해 여러 상황을 연출하는 최지원 작가의 작품들은 이러한 상황을 비꼬는 듯하다.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않은 무표정한 인형의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늘하기도 그 표정에 이입되기도 한다. 나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도자 인형들이 거리(street)의 수많은 사람들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미소를 머금기 이전의 무표정, 눈물을 흘리기까지 머뭇거렸을 허무함이 최지원의 작품 속 도자 인형에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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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는 왜 도자 인형을 택했을까? 회화의 넓적하고 평평한 성질이 매끈하고 볼록한 인형의 외연과 만났을 때의 대비감은 입체적이다. 눈앞의 있는 인형들이 마치 사진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느낌을 줄뿐더러 당장이라도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것 같다. 도자 인형 그 자체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한다면, 각 작품에서 표현하는 인형의 외연과 상황은 그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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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멜랑콜리아, 2021, 캔버스에 유채, 162.2 x 130.3 cm (사진 제공: 이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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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에는 4개의 인형이 등장한다. 보름달을 배경으로 각 인형은 마주 보거나 시선을 엇갈리지도 않은 채 자리를 잡고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distance)는 가까운 듯 보이나 다른 시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가 서 있는 공간을 떼어내 억지로 붙인 것처럼 말이다. ‘우울’을 뜻하는 멜랑콜리아는 현실을 직시하기 힘든 상태를 가리킨다. 정 가운데에 있는 인형이 정면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을 바라보면 허공에 사로잡혀 사물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공상하고, 활기를 띠기 어려우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못하는 우울한 상태다. 작가는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인형으로 표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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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포개진 붉은 방, 2021, 캔버스에 유채, 181.1 x 181.1 cm (사진 제공: 이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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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개진 붉은 방〉은 〈멜랑콜리아〉와 다르게 두 인형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심지어 겹쳐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작품 제목 그대로 ‘포개져’ 있는 두 인형은 붉은 꽃이 있는 붉은 색의 방에서 붉은 옷을 입고 오른쪽을 나란히 응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두 인형의 차림새인데, 뒤에 서 있는 인형의 옷이 앞에 앉아있는 인형의 옷보다 구시대에 유행한 스타일이다.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배경의 커튼을 통해 두 인형이 공연에 올라서는 인물임을 암시하며, 둘의 역할은 다른 세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도자 인형의 표정과 특징을 이용하여 상황을 기이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림 앞에 선 관람자는 자신의 오른쪽을 응시하는 인형의 시선을 따를 뿐이다. 그 시선의 끝에 카메라가 있을지, 관람자가 있을지, 작가가 있을지는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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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는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를 통해 관람자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지시한다. 제례 의식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을 뒤로한 채 8개의 인형이 서 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시선을 가진 인형과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인형이 3개의 캔버스를 이은 한 폭에 담겨 있다. 맨 왼쪽의 인형은 불타고 있는 광경을 길을 지나던 중 뒤돌아보고 있다. 가운데에 모여있는 인형들은 서로 비슷한 곳을 응시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의 인형은 앞선 인형들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나. 아마 배경 때문일 것이다. 왼쪽 캔버스의 배경을 자세히 보면 사람의 다리로 보이는 형상이 누워있는 채 그려져 있다. 이로써 그림의 배경이 이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앞에 의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인형들은 소란스러운 저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방관하고 무시할 뿐이다. 이러한 광경은 일상에서, 뉴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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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와 피해자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시위하는 현장에서 그들을 외면하는 시민들. 되려 시위의 목적을 폄하하고 자신의 이익만 주장하는 시민들. 시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동조하지만, 구경만 할 뿐 동참하기 꺼리는 시민들. 이들은 모두 도자 인형처럼 무표정으로 자신의 목적지만 보며 길을 간다. 작가는 인형의 표정과 외연을 통해서 무시와 방관, 차별의 공포를 그린다. 관람자가 인형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깨우치고, 옳은 길로 향하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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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베일 (Veil of Thought)》
구분 단체기획전
작가 갑빠오, 강목, 최수진, 최지원, 홍성준
장소 일우스페이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17 대한항공빌딩 1층)
기간 2022. 2. 23. ~ 5. 6. (공휴일, 월요일 휴관)
시간 화-금 10:00 ~ 18:30 / 토요일 13:00 ~ 18:30 / 일요일 13:30 ~ 18:30
요금 무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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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울과 슬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는 광경에 분노를 느끼고 개인의 무력함을 체감합니다. 이렇듯 개개의 의지와 노력, 목소리가 무시되어가는 세상이지만,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위해 포기하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모두 힘을 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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