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혹은 투명한 수정구슬 같은 회보라빛의 원이 중앙에 있다. 이 투명한 원 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형상의 물체들이 가득 차 있다. 원 속의 다채로움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무언가 기대했던 일을 앞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리고 기대로 가득 찬, 혹은 나의 행동의 모습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자리 잡은 나의 투명 구슬을 요리조리 굴려 가며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나의 모양을 투영해본다. 모든 타인이 나와 같을 수 없고 나 또한 나의 모양과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결이 맞는 색 또는 모양을 찾아간다.
그렇게 마음에 맞는 서로를 인지한 이들은 결합한 모양의 원형을 이룬다.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벤 다이어그램 형상을 만들거나 세 개의 삼각형 모양의 벤 다이어그램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겹친 부분들의 색은 나의 고유한 빛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 두 개 혹은 세 개의 색이 합쳐져 연결된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친구가 되고, 친구들이 무리가 될 때, ‘우린 정말 통하는 게 많아!’라며 나란한 원을 이루거나 ‘우리는 이런 부분은 잘 맞고, 저런 부분에서 통하는 게 있지.’라며 삼각형 형상의 벤 다이어그램을 이룬다. 공통분모는 함께하는 추억으로 쌓아가고, 각자의 영역은 자신만의 행동으로 쌓아간다.
하지만 언제나 나와 꼭 맞는,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결합 될 수는 없다. 16개의 작은 원이 오와 열로 배열되어 촘촘하게 배열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원도 있고, 주황색, 하늘색으로 가득 차 있는, 눈에 띄는 원도 보인다. 여러 색이 혼합된 배경과 달리, 단색으로 가득 찬 모습은 시선을 그곳으로 이끈다. 이 형상은 사회생활의 한 모습 같기도 하다. 회사, 학교, 학원 등 어쩌다 보니 한 곳에 속해서 같이 생활하게 되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것이 아닌, 선택권이 없는. 그래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서로를 맞춰가는 모양. 조금 색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과 다른 사람 모두가 있는 그런 모습이다.
소실점은 원근법에서 실제로는 평행선이 되어있는 것을 평행이 아니게 그릴 때, 그 선이 사귀는 점을 말한다. 작가에게 소실점은 행동과 행동이 만나서 만든 의미이다. 작가는 의미가 행동을 만드는 것이 아닌, 행동의 점이 쌓여서 ‘나’라는 소실점을 만든다고 본다. 그리고 계속해서 현재의 다음 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 원들의 모양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원은 나의 고유한 행동으로 가득 채워진 원이자, 나라는 소실점의 형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