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돌아온 릴레이 글쓰기 방금 릴레이 글쓰기의 마지막 경기가 끝났습니다! 한 달 간의 휴가를 앞둔 이번 경기는 여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그럼 수연–현지–강리–아현으로 이어진 마지막 경기의 순간을 함께 살펴 볼까요? |
인적이 없는 깊은 밤, 길 건너 어슴푸레 빛나는 가로등에 기대어 발 끝을 보고 걸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한낮의 하늘에 낮게 널어놓은 뭉게구름이 보였다. 꿈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현상이지만, 어쩐지 꽤 익숙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품고 있는 풍경은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캔버스에 유채, 195.4×131.2cm, 1953~1954. (이미지 제공: guggenheim.org/artwork/2594) |
감히 추측하기로는 화해할 수 없는 낮과 밤이 자아내는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북간의 첩보전쟁을 다룬 소설이고, 잭슨 브라운의 〈Late for the Sky〉의 가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연인에게 건네는 말이다. 김연수는 함께 할 수 없는 두 풍경이 한데 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복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죽거나,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소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
화해하지 못하는 풍경이 공존하는 〈빛의 제국〉을 노려보고 있자면, ‘종각역 카페’가 떠오른다. 이 단어의 조합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접해봤을 농담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먼저, 종각역은 서울광장에서 시작되는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중도이탈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근처의 카페를 찾아 들어가면, 무더위와 땡볕을 피해 시가행진에서 빠져나온 퀴어와 혐오세력이 나란히 시원한 바람과 음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종각역 카페’는 광장에서 대립하던 퀴어와 혐오세력에게 일종의 중립지대로 작동하는 휴식처를 의미한다. |
‘종각역 카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여기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들은 이미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장애인, 퀴어, 난민, 그리고 앞서 열거되지 않았지만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는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로지 찬성과 반대로만 편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종 간과하고는 한다, 우리는 이미 동료시민으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이때 〈빛의 제국〉이 단순히 감상하기 위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지금/여기의 우리가 이질적으로 함께 하는 방법을 사유하는 단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제가 현지에게 전달한 단어는 집입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우리에게 ‘집’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화상회의와 재택근무가 늘면서 진정한 휴식은 무엇이고, 집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죠. 의도와는 달랐지만,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과 글을 보고 아현이 떠올린 단어도 이해가 갑니다. 이런 게 릴레이 글쓰기의 묘미랄까요? |
따스한 느낌이 있는 작품을 고르고 싶었으나 어쩐지 맑은 하늘과 깜깜한 저녁이 공존하는, 어딘가 이상하고 차가운 느낌을 뿜어내는 작품을 강리에게 건네고 말았네요. 이런 풍경의 집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피어날지 기대와 호기심을 담아 〈빛의 제국〉을 골랐습니다. |
지난 1월, 런던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빛의 제국〉 연작 중 1961년에 그려진 작품이 5,150만 파운드(963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 관해서는 유럽에서 경매된 그림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빛의 제국〉을 인용한 작품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작가가 이 작품을 차용한 이유에 관하여 생각하다보니, 농담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요. 평소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작품을 건네어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준 현지에게 감사합니다. |
〈빛의 제국〉은 제가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며 처음으로 미술이라는 과목이 흥미로운 걸 일깨워준 작품입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희미한, 이 기이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작품 속 배경을 보고 있으면 그림 안에 살고 싶어집니다. 저는 수연이 몽상이나 빛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을 거라고 예상하는데요. 강리가 작품에서 화해할 수 없는 경계를 읽고 화해와 연대라는 주제로 확장한 걸 보니, 화해도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지난 7월 14일 발행된 땡땡레터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지칭하여 "애보리진(Aborigine)"이라 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독자께서 보내주신 피드백을 통해, "애보리진"은 원주민의 다양한 배경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기에 부과된 부정적 의미를 강화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땡땡 콜렉티브는 집단이나 개인의 특정한 속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인 "애보리진"을 원주민의 오랜 역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로 정정합니다. 앞으로 혐오표현에 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
🔊 15호를 마지막으로 시즌 3를 종료합니다. 한 달 동안 휴식과 재정비를 위한 시간을 갖고, 9월 1일부터 땡땡레터 시즌 4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떠나보내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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