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돌아온 릴레이 글쓰기 『땡땡레터』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돌아왔습니다! 바로 ‘릴레이 글쓰기’입니다. 한 사람이 단어를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단어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선정합니다. 그 다음 사람은 그 작품에 관한 글을 쓰고, 마지막 주자가 단어를 맞힙니다. 강리가 단어를 고르고, 아현이 떠올린 작품에 관해 수연이 글을 썼습니다. 현지는 과연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요? |
안녕하세요. 평화로운 저녁입니다.
아, 평화로운…. 누군가에게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 저녁, 낮, 어쩌면 새벽일 수 있네요.
고요한 새벽을 빌려 글을 쓰는 지금도 어느 곳은 전쟁을 치르고, 어느 곳은 일방적인 폭격을 당하고 있을 겁니다. 또 어느 곳에서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은 상처를 치유하고, 떠나간 사람을 추모하고 있을 겁니다. 종전하지 않은 분단국가에서도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과 두려움은 늘 있다마는, 요즘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전쟁은 역사책에서만 쓰이는 단어 같아요. |
겪어보지 않아서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기 힘들다. 물리적 거리감은 생각보다 인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한 영상을 보고 벌벌 떨고 눈물이 나다가도 어느새 일상을 지낸다. 이상하리만큼, 같은 지구상에 있는 게 맞나 싶은 정도로 까먹고는 하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가령 매일같이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 뉴스 제목보다, 오히려 무심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스며든 비극을 볼 때 말이다. |
그런 점에서 잠시 뒤 소개할 사진을 찍은 작가, 지야 가픽(Ziyah Gafic, 1980~)은 스스로 예술가라 칭하기보다는 수사관으로 여긴다.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태어났고,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회와 전 세계에 걸친 이슬람 공동체를 사진과 비디오로 담는다. 가픽은 주로 시계, 신발, 안경과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찍는다. 겉으로 보면 그저 단순한 물건이지만, 이들은 사실 보스니아 내전 중 형성된 대형 무덤에서 발굴한 것이다. 가픽은 학살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찾아내는 유일한 과정으로써 무덤에서 발굴된 모든 것을 찍어왔다. |
지야 가픽은 특히 자신이 태어난 지역인 사라예보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두고, 보스니아 내전의 흔적을 쫓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주축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보스니아를 비롯해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 공화국이 모인 사회주의 형태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하 유고)이 출범한다. |
유고의 첫 대통령 티토는 각 공화국에 자치권을 부여하며 갈등을 무마시켜왔는데, 1980년 티토가 영면하면서 유고는 정치적 혼란을 맞는다. 이후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1989년 연방의 새 대통령이 되면서 내전 조짐은 커졌다. 게다가 같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련의 붕괴가 점차 다가오자 각 공화국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
이에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연방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1992년 보스니아도 독립을 선언했으나, 보스니아 인구의 1/3이 세르비아인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사람은 연방에서 탈퇴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연방 역시 보스니아의 독립만은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방의 지원을 받은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의 무슬림을 무참히 공격했다. |
보스니아 내전(1992~1995)은 세르비아의 지도자들이 인종 분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해 ‘민족 청소’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유고 내전 중 가장 참혹한 전쟁이 됐다. 20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2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은 1995년 12월 스릅스카 공화국이 보스니아에 합병됨으로써 일단락됐다. |
지야 가픽, 〈신원 조회(Quest for ID)〉, 2001, C-프린트, 40×40, Grazia Neri-Agency, 밀라노.
|
〈신원 조회〉는 보스니아 내전의 여파가 남은 2001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제목과 같이 이슬람교도 마을에서 대량 학살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흰 자루를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늘어놓았다. 시신 주변에는 옷가지, 신발 등 죽기 전 실제로 그 사람이 입거나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함께 늘어져 있다. 그러나 시신 뒤에는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맑고 푸른 하늘과 마을이 펼쳐져 있다. 평온한 하늘 아래, 울타리에 카펫을 널어 말리는 일상적 행위는 시신이 증언하는 참혹함과는 대비된다. |
만약 사진을 의인화하여 표정이라는 게 있다면, 〈신원 조회〉는 세상 무표정할 것만 같다. 비극에 무심해져 만들어진 표정이 아니라,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체념, 묵연함이 묻어난 무표정 말이다. ‘신원 조회’를 통해 실종자가 모두 확인되면, 무덤에서 사라져가는 시신과 일상적인 물품만 남게 될 것이다. 시신과 함께 널브러진 일상품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이들은 희생자를 확인할 수 있는 최후의 증거이다. 이런 사람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이자 영원히 남는 기억. |
사라예보의 거리에는 영문 모를 붉은 자국이 있다. 이는 내전 당시 박격포탄이 떨어진 자리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자국 위에 붉은 잉크를 칠하고, 이를 ‘사라예보의 장미’라고 부른다. 사라예보에는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하는데, 수많은 포탄의 흔적 중 ‘최소 세 사람이 희생된 자리’는 장미로 표시되었다. 사라예보에는 200개가 넘는 장미가 피어 있다. |
지야 가픽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희생자의 유품을 쫓아다닌다. 이는 과거의 과오와 아픔을 잊지 말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집단 학살은 인종, 정치, 종교적 이유, 종족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의도적인 파괴 행위다. 집단 학살은 생명을 앗아간 만큼이나 희생자의 재산과 문화적 유산을 무너뜨렸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생각조차 파괴했다. |
그러나 완전 범죄란 없다. 세상에는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이 남는다. 죽은 자의 유품은 사라지는 육체나 선택적 기억보다도, 더 오래 남는다. |
⸻
*참고 문헌
이정훈. 「[특집] 보스니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사례연구-보스니아 내전과 데이턴 평화협정의 교훈」. 『전략연구』 18 (2000): 80-99.
|
지난 겨울, 혁명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침대가 떠오른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1995)에는 "나는 침대에서 혁명을 시작하겠어(I'm gonna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라는 가사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아현이 투쟁 너머 평화를 제시해주었고요. 각자가 떠올리는 혁명은 이토록 다르겠지만, 더 나은 삶을 앞당기는 순간에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제가 강리에게 받은 단어는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이 떠올랐지만, 너무 뻔한 것 같아 제 관점에서 떠올린 혁명의 이미지를 펼쳐보았습니다. 투쟁, 전쟁, 희생과 죽음 등 저에게는 피와 눈물로 결집한 단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읽고 있었던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샬럿 코튼.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권영진. 서울: 시공아트, 2007.)에서 이와 비슷한 사진 작품을 골라보았습니다. 두세 개의 후보군에서 결국 제가 고른 작품은 지야 가픽의 〈신원 조회 Quest for ID〉(2001)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곳들이 많으나 저는 그 투쟁과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는 평화로운 시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명군의 오랜 투쟁이 끝나고 평화를 겨우 되찾은 어느 미래에 그 역사적 순간의 단서를 찾는다고 상상하면, 이 작품이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제가 너무 어려운 작품을 수연에게 보내주어 부담감을 가중한 것 같습니다😅. |
세계사 시간에 잠깐 배운 사건을 다시 자세히 들추어보고 시간대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역사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장 첫 문단은 실제로 제가 느끼고는 하는 섬뜩함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 감정을 되돌아보고 해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8월 7일까지 《나너의 기억》이라는 전시를 합니다. 전시작 중 하나인 〈붉은색 없는 1395일〉은 보스니아 내전 시기에 발생한 사라예보 포위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43분가량의 영상이지만 함께 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
‘글을 관통하는 ‘전쟁’이 정답일까?’ 했는데 혁명이었군요!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웃음) 저는 혁명에서 시작한 릴레이 글쓰기 덕분에 지야 가픽과 보스니아 내전의 역사까지 알게 되어 유익했어요. 여러분은 ‘혁명’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그리고 이번 레터는 어떻게 다가오셨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