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작가를 소개합니다! 💫 신진작가 연구 💫 2022년을 맞이하여 땡땡 콜렉티브가 주목하는 신진작가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현지의 「타인 그리고 내가 있었다」를 통하여 작가 김송리의 세계에 접근해보려 합니다. 팬데믹 시대의 자아 표현에 대해 고민하며, 대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하여 플라스틱구조물에 이르는 작가의 세계관을 시간순으로 돌아보고자 합니다. 타인 그리고 내가 있었다. 글. 현지 작가 김송리는 인간의 죽음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누군지 모를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 사고에 대해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을 추모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형상은 언젠가 소멸하나 영혼은 남아서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며, 작가는 영혼이 모여있는 공간을 대자연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대자연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은 그 자체로, 숭고와 경외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작가는 〈A Place of Sublimity〉(2017~2021) 연작에서 대자연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이를 푸른 빛의 색면으로 덮는다. 우뚝 솟아있는 설산과 산맥이 펼쳐져 있다. 설산 아래의 강에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담은 풍경이 펼쳐진다. 색면으로 덮인 회화는 숭고와 경외의 이미지를 두텁게 형성하며, 영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대자연의 의미를 확대한다. 죽음을 경험하며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김송리는, 자연을 죽은 이의 영혼 또는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가상의 공간으로 확대한다. 그리고 확대된 공간에서 타자를 직관하며, 다시 자아를 발견한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지만, 무리 속에서 고독과 고립을 느낀다. ‘孤(외로울 고)’로 시작하는 두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고립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 없어지는 것, 고독은 감정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고립: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 고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때,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바로 없을 때 고독을 느낀다. 이후 '이것을 어디에도 말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고립을 느낀다. 때때로 타인에 의해 혹은 나 자신에 의해 고독과 고립을 느끼곤 한다. 〈Island〉(2021)는 웅크리고 있는 사람 모형이 한 개씩 들어가 있는 비닐봉지 여럿이 매달아 놓여 있다. 비닐봉지는 개인의 방이라도 된 듯 주렁주렁 달려있고, 이들은 마치 각각의 섬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뜻 보기엔 모두 단절된 공간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 시대의 음압병실, 비대면 시대의 소통 격차, ZOOM에서 모였지만 화면을 볼수록 소통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상황.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가는 것을 느낄수록 비닐봉지 속 사람 모형처럼 힘껏 웅크린다. 주변의 상황보다는 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대부분을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Island〉를 불투명한 소통이 불가한 단절된 공간이 아닌, 투명하게 비치는 공간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투명한 공간이기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결국 함께임을 인지하며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Island〉를 통해 보여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은 그 내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김송리, 〈플라스틱 에고(Plastic Ego)〉, 2021, 커피 컵뚜껑, 가변설치. (출처: http://www.artmail.com/db/2021/20211127-masqueparade.htm) 남들 앞에서는 견고한 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텅 비어있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Plastic ego〉(no.1~no.6) (2021)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일회용 커피잔의 뚜껑으로 만들어져 빛을 내뿜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웅장한 밝은 빛과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에 이끌려 작품 앞에 서면, 얇고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조직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SNS에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선택하고 조합하여 나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내가 원하는 모습, 공유하고 싶은 모습을 선택하여 개인의 모습을 구축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모습만을 토대로 나를 감지한 타인을 만났을 때, 그 이면에 있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힘들어진다. 완벽한 나의 모습이 유지되기를 바라기에. 내가 구축한 나의 모습에 의해 내 자아가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는지 모두 보여줄 수 없음을 느끼며 다시 고독과 고립을 느끼는 상태를 마주한다. 김송리는 대자연의 이미지를 타자의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하고, 타자로부터 자아를 발견한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자아가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과 고립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투명한 비닐을 통해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여, 단절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타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타자와 나 그리고 나의 자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작업은 관람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삶을 살아가는 개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떤 자아를 형성해가야 할까. 김송리의 작업을 보며 죽음과 개인 그리고 자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김송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현지 저는 〈Plastic ego〉(no.1~no.6)이 내뿜는 빛의 향연에 이끌려 김송리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을 쓰며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지, 제 자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구독자님께서는 김송리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안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오늘, 땡땡레터 어땠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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