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호의 두 번째 메일이 도착했어요! 💌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Web 발신] 안녕하세요, 땡땡레터 집배원입니다. 고객님 앞으로 발송된 우편을 21. 07. 01.에 배달 완료 하였습니다. 땡땡레터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에게 🌏 얼마 전,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 읽고 나서 네가 떠올랐어. 그거 알아? 좋아서 그 좋았음을 “좋았다”하고 끝내기 아쉬워서 흔적이라도 남겨보려고 애쓰는 거. 다 읽고 미련 없이 반납했는데 예약이 꽉 차 있는걸 보니 한 번 더 읽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 이제 책 얘기를 해볼까? 정세랑 작가의 책이어서 빌렸어. 누가 추천해줬거든. 그래서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어. 처음엔 흔한 권태기가 온 연인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어. 그런데 외계인이 나오는 거야. 여기서 흠칫했어. 나 외계인, 우주 같은 초현실적인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웃음) 그렇지만 계속 읽었어. 그냥 그러고 싶더라. 주인공은 한아와 경민이야. (사실 경민이 외계인인데 편의상 경민이라고 할게. 경민의 껍데기를 입고 경민이라 불린단 말야) 한아는 익숙한 것을 좋아해. 그리고 ‘환생’이라는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어. 사연 있는 소중한, 그렇지만 닳거나 유행이 지나서 입을 수 없는 옷들을 수선해줘. 계속 그것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에 반해 경민은 자유분방하고 여행을 휙 휙 잘 떠나.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야. 직장도 금방 관둬버리는 면을 보면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어. 이 둘은 사귄 지 11년이 되었고, 자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경민에게 한아는 아쉬움과 체념을 느껴. 헤어질까 고민하기도 해. (한아의 마음에 전적으로 동의!) 경민이를 보고 있으면, 한아를 정말 사랑하는 건가? 왜 이렇게 애정이 없어!! 우리 한아 좀 보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 와중에 경민은 또 한아를 놓고 유성우를 보겠다면서 캐나다로 훅 떠나버려. 나는 한아가 경민을 잡고 있기에 유지되는 관계라고 느꼈어. 이후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서 뉴스에 크게 나오고 한아는 경민에게 애타게 연락하지만, 연락은 닿지 않아. (몹쓸 놈!) 이후 경민은 돌아와. 그런데 돌아온 경민이 이상한 거야. 한아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한아만을 바라보고, 한아를 기다려. 항상 한아를 기다리게 했던 경민이가 완전 다른 사람이 돼서 돌아온 거지. 한아에게 애정도 듬-뿍 주고 사근사근해졌어. 이게 좋긴 한데 사람이 여행 한 번 갔다 와서 바뀌었다는 게 이질감도 들고 불안하기도 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잖아. 알고 보니 외계인과 경민이 거래를 한 거였어. 경민은 외계인의 우주여행권과 우주 화폐를 받고 외계인은 경민의 껍데기를 받고. 그렇게 외계인은 지구로, 진짜 경민은 우주로 간 거야. 왜, 경민의 몸이었을까? 외계인은 오직 한아를 위해서, 정확히 말하면 한아 곁에 있기 위해서 경민을 택한 거야. 거래를 제안한 거고. 경민은 한아의 오랜 남자친구잖아. 한아의 이상형을 찾아서 한아 앞에 나타나는 것보다, 경민으로 나타나는 게 더 오래 한아 곁에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이 크잖아. 안 그래? 한아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아니면 진작에 헤어졌겠지. 결국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이 외계인임을 들키면서 외계인은 모든 걸 한아에게 털어놔. 처음에 한아는 혼란스러웠어. 그러나 점차 새로운 경민에게 적응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돼. 외계인 경민,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거야. 경민의 모습은 겉껍질일 뿐 이제 중요하지 않은 거야. 경민은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라고 말해. 도대체 얼마나 큰 사랑이면 우주를 횡단해서 올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삶의 터전을 두고, 엄청난 빚까지 져가면서 한아 곁으로 왔을까.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며 마음을 키웠을까.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어. 이 범우주적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두 사람의 앞길이 평탄하기를 빌 수밖에. 경민과 한아는 결혼을 해. 서로 사랑하고, 경민에게 지구에 계속 있으려면 결혼 증명서가 필요하기도 했어. 큰 사랑이 한아를 결심하게 만든 거야. 이렇게 잘 사나 싶었는데 진짜 경민이 돌아와. 전 남자친구 경민. 이제 얘는 X라고 부를게. X는 돌아와서 이렇게 말해. “X: 놓아버리고, 놓쳐버린 걸 인정해. 하지만 정말 사랑했던 걸 알아?” “한아: 말하지 마. 괜히.” “X: 아니 해야겠어. 세상에…. 우주 끝까지 갔더니 네가 그걸 아는 게 나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더라. 진부하게 말이지.” X는 후회만 남았어. X도 오직 한아를 위해 우주여행에서 다 부서져 가는 몸을 이끌고 왔음에도 한아를 붙잡을 수 없었어. 그 노력과 마음은 가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 있을 때! 놓치고 아니, 방치하고 후회하지 말란 말야) 한아에겐 이미 경민이 가득 채워져 있었거든. X가 돌아와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경민은 잠시 떠나. 한아가 X에 대해 마침표를 찍기를 기다리는 거지. X의 끝맺음과 함께 정말 경민으로 시작하기 위해. 경민이 떠나있는 동안 한아는 힘들어해. 어디선가 경민이 망원경으로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아도 곁에는 없는걸. 연락도 안 되고. X가 죽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경민은 돌아와. 둘이 입맞춤을 하는데. 여기가 정말 인상 깊었어. X가 죽기 전 한아에게 마지막 부탁이라며 입맞춤을 부탁해. 한아는 너무나 메말라버린 입술에서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어. 과거와는 달라진 한아였으니까. 그런데 돌아온 경민과는... “한아의 모든 세계가 경민의 입술에서부터 폭팔적으로 뻗어 나갔다. 다시 집이 생기고, 별이 생기고, 무한대로 뻗은 항로가 생겼다. 숨을 내쉬었다. 우주적인 입술이었다.” 멋지지 않아? 경민을 기다리며 무너지고 무너뜨리던 세계가 다시 그의 입술에서 뻗어 나가다니. 우리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자. 한도를 벗어날 수도 그 한도를 아낄 수도 있지만, X처럼 지나고 후회하지 말자. 지구에서 한아뿐인 사랑을 하자. 2021년 7월 1일 현지 PS. 어쩌면 외계인 경민이 살았던 우주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Night Sky #2>를 보며, 우리 눈에 담을 수 있는 하늘은 한정되어있지만, 마음속에서 끝없이 확장되는 밤하늘을 느껴봤으면 해.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Night Sky #2>, Alkyd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45.7 × 54.6 cm, 1991 이미지 출처: https://www.artic.edu/artworks/140645/night-sky-2 👻 현지 애정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습니다. 비야 셀민스의 밤하늘 연작을 보며 떠오른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땡땡레터의 구독자님도, 이 책을 읽어 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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