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호의 세 번째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Web 발신] 안녕하세요, 땡땡레터 집배원입니다. 고객님 앞으로 발송된 우편을 21.07.08.에 배달 완료하였습니다. 항상 땡땡레터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나’에게 안녕! 요새 어떻게 지내? 코로나다 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즈음 같은 상황이라 만나지도 못하고 편지를 쓰는 지경에 이르렀네. 나는 정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을 틈타 ‘집콕’하면서 명작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었어. 최근에 다시 본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이야. 찾아보니 2015년이더라. 이 드라마 덕분에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가족, 사랑,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드라마야. 그중에서 내가 눈물 콧물 쏟으면서 봤던 편은, ‘엄마’ 이야기를 다룬 5화 ‘월동 준비’였어. 특히 한 나레이션이 나를 파고들었는데, 너한테도 알려주고 싶어.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는 나의 수호신이며, 여전히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에는 이름이다. 엄마는, 힘이 세다.” 엄마. 소리 내어 되뇌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런 복잡한 감정은, 인류 보편의 것일지도. 루이즈 부르주아, 〈Maman〉, 1999, 청동, 대리석, 스테인리스 스틸, 9271×8915×10236mm, 테이트 모던, 영국. (이미지 출처: https://www.wikiart.org/en/louise-bourgeois/maman-1999) 5화를 보면서 한 작품이 생각났어.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위태롭게 딛고 서 있는 거대한 거미, 보이지? 내가 이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제목이 ‘거미’일 것으로 생각했어. 나중에서야 제목이 전혀 뜻밖이라 놀랐던 기억이 나. 제목은 〈Maman〉,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이야. 거미라고 하면 대부분 두려움을 느끼고는 하는데, 게다가 사람의 키보다 몇 배는 더 큰 거미라니. 루이즈 부르주아는 왜 이 거대한 거미에 ‘엄마’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혹시 엄마와 관련해 어떤 공포라도 있었던 걸까? 〈Maman〉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거미를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해. 일반적으로 거미는 몸통에 비해 굉장히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몸통의 하중을 분산하고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몸통을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 두거든. 하지만 〈Maman〉의 거미는 얇고 긴 다리를 땅에 디딘 채 몸통을 부자연스럽게 치켜올리고 있어. 실제 거미와 비교하면,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이렇게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자세의 거미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어. 〈Maman〉 상세.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Maman_(sculpture)) 거미 배 아래에 그물처럼 보이는 철망이 붙어 있어. 그리고 그 안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하얀 구슬 여러 개가 들어 있어. 그러니까, 이 거미는 알을 품고 있는 ‘엄마 거미’인 거지. 거미는 종류에 따라 알을 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 하지만 모든 엄마 거미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하나 있어. 엄마 거미는 일단 한 번 알을 낳으면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고 탈진할 때까지 알을 지킨대. 정말 대단하지? 〈Maman〉의 엄마 거미가 이렇게 위태로운 모습으로 몸을 잔뜩 추켜올려 꿋꿋이 버티고 선 것은, 배에 품은 알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서였어. 거미는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에 가까운 고통도, 어쩌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거지. 그렇다면 루이즈 부르주아가 〈Maman〉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뭘까? 부르주아는 태피스트리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어. 그런데 부르주아에게 평생에 영향을 미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바로 친언니처럼 믿고 따른 가정 교사가 자신의 아버지와 10여 년 동안 불륜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거야. 20대가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루이즈 부르주아는 분노했어. 아버지를 증오하고 가정 교사를 원망했지. 하지만 둘보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였다고 해. 어머니는 이 모든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정을 깨지 않으려 모른 체했던 거야. 둘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누구보다 믿었던 어머니가 오래도록 불륜을 묵인했다는 사실이 부르주아를 더 절망하게 했어. 글쎄, 나는 처음에 조금 의문이 들었어. 아버지와 가정 교사의 불륜으로 인한 분노의 화살이 어머니에게로 간 거잖아. 내 딴에는 왜 분노의 초점이 어머니에게로 향했나 싶었어. 그런데 한편으로 또 이해되기도 해.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기에 아무 발악도 하지 않은 어머니가 미련 곰탱이처럼 보였을 수도?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기에, 어머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에,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던 어머니가 미웠던 거야. “가끔은 엄마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엄마에겐 왜 최소한의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건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란 걸, 바로 나 때문이란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정작 사람이 강해지는 건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 자존심마저 던져 버렸을 때다.” -〈응답하라 1988〉, 5화 ‘월동 준비’ 편 나도 가끔은 너무 억척스러운 엄마가 싫을 때가 있었어. ‘엄마는 왜 저럴까’라고 생각하다가도, 거기서 멈춰버렸어.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그 억척스러움을 방패 삼아 조금은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었어. 엄마의 눈으로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보아서, 나는 세상의 좋은 면을 조금은 더 볼 수 있었어. 내가 그악스럽지 않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았을 엄마가 상처 난 몸으로 온갖 것을 막아섰기 때문이야. 그것을 이제야 아주 조금, 알아.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내 자식만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떨리는 얇은 다리로 자식을 배 아래 품고 모든 고통을 감내했던 엄마. 미련하고 억척스러운,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견뎌 낸, 위대한 엄마. 루이즈 부르주아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어른이자, 동시에 지독한 모성의 존재였어. 부르주아는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모두가 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도록 했어. 이 거대한 거미는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우리가 품은 ‘엄마’에 대한 감정을 두드렸어. 쓰고 보니 말이 정말 길어졌네. 너는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니? 아니면 누군가의 ‘엄마’인 입장에서, 〈Maman〉이 어떻게 보였니? 너 생각이 궁금해. 요즘 코로나가 다시 심해졌더라. 건강 조심해! 답장 기다릴게. 2021년 7월 8일 목요일 수연 씀 🌻 수연 호흡이 긴 글이었습니다.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 염려되네요. 글을 쓰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롤러코스터 같은 기복을 겪었습니다. 그만큼 엄마와 보낸 평범한 기억에는 많은 감정이 오갔나 봅니다.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 10시간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엄마가 있으니까요. 아, 마지막에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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