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호의 두 번째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 광주비엔날레 다녀왔습니다! 🚆 오늘도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두 번째 순서는 수연의 「양림산과 아마존」입니다. 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방문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수연은 뜻밖의 공간, 뜻밖의 사건을 마주했습니다. 바로, 아트폴리곤 건물과 나란히 위치한 베이스폴리곤에서 진행한 전시 《Space 3 Re-Born》입니다. 이 전시는 칠레의 예술가 파트리샤 도밍게스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작업한 연작을 다루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수연의 마음을 끌어당긴 작품을 함께 살펴볼까요? 양림산과 아마존 글. 수연 따뜻한 햇볕이 기다림의 무료함을 달래던 5월의 광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관람을 위해 풀과 나무가 우거진 양림산에 도착했다. 숲의 초록 빛깔과 조화를 이루는 빨간 벽돌집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아트폴리곤, 글라스폴리곤을 거쳐 다다른 곳은 베이스폴리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양림산 지하 공간에서 파트리샤 도밍게스(Patricia Domínguez)는 〈어머니 드론〉(2020)을 통해 2019년 여름, 아마존 화재 사건의 고려되지 않은 희생양을 조명한다. 〈어머니 드론〉, 2020, 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제단, 수채, 플라스틱 손과 돌, 홀로그램 프로젝션, 가변크기, 20분 51초, 볼리비아 키오스코 레지던시, 마드리드 센트로센트로 커미션. (이미지 출처: https://www.gwangjubiennale.org/gb/eventCH/author/work.do?B_AU_KEYNO=11289) 아마존의 화재는 2019년 7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8월 20일, 나사(NASA)와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에서 아마존 일대의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아마존 일대가 붉게 표시된 모습은 국제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단순히 퀘이마다(queimada) 기간이라 불이 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퀘이마다는 브라질의 농장주들이 자발적으로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 불을 지피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기상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당시 아마존 화재가 기존의 건기에 발생한 퀘이마다와는 다른 양상이며, 기후변화와 열대우림 파괴가 아마존 화재의 규모를 키우고 장기간 지속하게 했다고 주장하였다. 약 20분 길이의 비디오 작품 〈어머니 드론〉은 아마존 화재 사건의 시작과 끝을 서사시 형태로 전개하기보다는, 사건 이면에서 상처 입고 저항하는 지구촌 구성원을 면면이 비추는 방식을 택했다. 여러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교차하기에 각 사건을 타임라인대로 분류하기는 힘들겠으나, 크게 세 가지 대상을 비추고 있다. 정착형 식민지의 풍습과 시력을 잃은 투칸, 아마존 파괴 반대 시위를 감시하는 칠레의 경찰이다. 작가에 의해 연출 및 재구성된 정착형 식민지 풍습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트리샤 도밍게스가 직접 보고 기록하였다. 이미지가 이 세 가지 대상을 비춘다면, 사운드는 심장 소리로 채워져 있다. 영상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심장 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명력의 상징 아마존을 대변한다. ‘초록색’은 〈어머니 드론〉의 한 축을 담당한다. 정착형 식민지의 풍습을 묘사한 부분에서 초록빛으로 채워진 공간은, 원주민의 토지와 숲을 상징한다. 얼마 뒤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나무꾼을 연상시키는 인간이 새빨간 조명과 함께 등장한다. 이는 유럽인이 이주하여 정착하였음을 표현한 것으로, 초록과 빨강의 대비가 눈에 띈다. 초록과 빨강은 각각 아마존과 화재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화재 이후 칠레에서 일어난 아마존 파괴 반대 시위에서, 시위 참여자들은 자기들을 감시하기 위해 헬리콥터와 드론을 띄운 경찰에 초록색 레이저를 쏘았다. 애초에 초록색 레이저는 아마존 파괴 반대 시위를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칠레의 경찰 문화를 비판하는 혁명의 색으로까지 작용한다. 이처럼 〈어머니 드론〉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초록색’은 영상에서 비춘 여러 사건을 결국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기존 영상에 새롭게 덧대어 등장하는 투칸과 인간의 안구이다. 3D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투칸과 인간의 안구는 360도 회전한다. 동시에 두 안구는 수직으로, 일렬로 줄을 맞춘 채 엔딩 크레딧처럼 재생된다. 이는 영상이 끝날 때까지 반복된다. 파트리샤 도밍게스는 2019년 아마존 화재가 발생하자 불길에 다친 동물을 돌보기 위해 급조된 동물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던 중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투칸을 돌보게 되었고, 이 경험은 도밍게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도밍게스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력을 잃은 투칸을 돌보면서 숲의 정신에 가닿을 수 있었다. 투칸은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내 손이 투칸의 깃털과 스쳤을 때, 나는 한순간에 초목의 위대함과 연결되며 머리가 빙빙 돌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공포에 질린 새와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나, 우리의 심장은 함께 고동치고 있었다. 나는 투칸을 통해 살아있는 모든 것, 지구의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우리의 몸으로 타고 들어온 물을 느꼈다. 물은 우리 몸속에 빠르게 차올라 넘치고 있었다. 물은 다시 우리에게서 빠져나간다. 결국 우리의 신체는 물에 귀속한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 파트리샤 도밍게스는 투칸과 영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지구의 박동을 느꼈다. 〈어머니 드론〉에서 3D로 묘사된 투칸과 인간의 안구는 모두 오른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눈에 들어간 사소한 이물질을 빼내기 위해 신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투칸과 인간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대표하는 생물로 꼽히는 투칸의 상처는, 아마존 화재 사건의 희생양을 대변한다. 인간의 상처는 17~18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로 인해 영토를 잃은 원주민, 동시대에도 여전한 인종 차별과 영토 분쟁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시민을 나타낸다. 파트리샤 도밍게스가 결국 우리의 신체는 물을 통해 만물과 이어지고 물에 귀속한다고 했던 것처럼, 원주민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똑같은 눈물이 시민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이는 동시대인의 눈에서 떨어져 휴대전화 화면에 달라붙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물’ 자체의 성질보다는 ‘물’이라는 자연으로부터 맺는 세계와의 관계와 우리의 근원에 관해 주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머니 드론〉에서 ‘어머니’는 결국 태초의 신, 만물의 어머니 ‘가이아(Gaia)’를 의미하며, 우리는 모두 하나에서 발생하여 만물을 이루는 막대한 요소 중 하나임을 암시한다. 〈어머니 드론〉은 아메리카 대륙에 관한 지정학적 배경지식이 없다면 구체적인 사건과 원인을 연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감과 함께 ‘내’ 일만 해도 바쁜 현대 사회의 많은 이, 그리고 이들의 분열된 이상향을 향해 〈어머니 드론〉은 ‘연결감의 회복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은 그 자체로 우리가 가이아(만물, 대지)에 퍼져있는 단일체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불평등과 고통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태어나는 순간 세계와 관계 맺고 우주에 결속되었기에,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 수연 호랑가시나무 베이스폴리곤에서 〈어머니 드론〉이 설치된 방에 들어서자, 환한 초록의 인공조명이 작품을 밝히고 있던 게 기억납니다. 조명의 영향이 닿은 제 몸에서도 초록빛이 나는 걸 보며 ‘조명이 이렇게 세다고?’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어머니 드론〉 영상으로 눈길을 돌리니, 영상에서도 온갖 형태의 초록이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원주민 역할의 인물은 초록 LED로 자체 발광하는 의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영상에 집중하고 어렴풋이 주제를 알아가던 찰나, 영상 속 원주민과 초록 빛깔 조명을 입은 제가 겹쳐 보이며 동질감과 묘한 결합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시력을 잃은 투칸을 돌보며 영적 결합을 경험한 작가의 감정을 잠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감과 제 감정을 지금에서야 온전히 전하기는 힘들겠지만, 제 글을 읽으며 혐오와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시대 지구촌의 수많은 이들과 잠시나마 연결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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