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호의 두 번째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 광주비엔날레 다녀왔습니다! 🚆 오늘부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아현의 「당신의 응답에 답한다」입니다. 이 글은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이 파빌리온 프로젝트 《한 쌍의 메아리》에서 선보인 〈FM 100.8〉에 관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정여름 작가의 작업을 경유하여 대만과 한국의 유사성을 짚고, 쓰촨 사투리를 사용하는 화자로부터 대만의 톡특한 상황을 이해한 다음, 데리다의 '유령'을 소환하여 연극적으로 설계된 작업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아현을 따라 광주의 따뜻한 늦봄으로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 당신의 응답에 답한다 글. 아현 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교실 크기의 방에 들어선다. 곧 모든 조명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간다. 투사된 영상의 빛만이 방을 밝히고,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지막이 깔린다. 영상 속 내레이션은 대만의 여러 지역과 개인, 국가의 역사를 설명한다. 내레이션에 따라 방의 벽 양옆에 핀 조명이 켜지더니 사물을 하나씩 비춘다. 내레이터의 지휘 아래 고고한 빛을 받는 어린 시절을 담은 액자, 아버지의 훈장, 미러볼, 선풍기, 스탠드, 라디오 등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어둠에 적응이 된 당신은 그 방 한쪽이 누군가의 집 안을 모방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 이상 영상 속 이야기가 누군가의 사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신은 점차 영상에 몰입한다. 영상이 종료된 이후, 영화가 끝난 영화관의 조명이 켜진 듯 방을 밝히는 조명이 켜지면서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때 당신은 어떤 감상이 떠오르는가? 장리런&청위안&루이란신, 〈FM 100.8〉, 영상 설치, 가변 크기, 26분, 2019. (이미지 출처: https://www.acc.go.kr/main/exhibition.do?PID=0202&action=Read&bnkey=EM_0000004441)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의 〈FM 100.8〉을 회상하면서 정여름 작가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19)과 〈긴 복도〉(2021)를 연상할 수 있었다. 세 작품은 엇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며 유사한 경험을 통과한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에서 정여름은 VR 게임 ‘포켓몬GO’를 이용해 일반인은 볼 수 없었던 용산 미군 기지의 실체를 파헤치고, 미군 기지의 역사와 정보를 작가 개인의 역사와 연결시킨다. 〈긴 복도〉에서는 폐허가 된 미군 기지를 찾아간 AI 탐정과 AI 동료의 대화를 통해 ‘미군 기지’, ‘미국’이 설계한 음모를 탐방한다. 식민지배를 받아 고향을 잃고, 사라진 역사적인 공간을 상기하려는 노력. 분명 세 작품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역사의 일부가 잊히지 않고자 하는 염원은 결코 독특한 유사성을 그린다. 대만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FM 100.8〉의 화자는 중국 쓰촨 사투리를 구사하는 대만인이다. 그가 서술하는 이야기는 이와 맞닿아 있는 한 가정의 역사다. 대만에서 중국 쓰촨 뿌리를 가진다는 것은 차별과 식민지배, 이민 가족을 상기시키는 정체성 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한민국이 미국의 사실상의 또 다른 지배를, 북한이 중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은 것과 같이, 대만은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 군력의 도움을 받았다. 그 중 중국 쓰촨성의 공군들이 대만에 머물게 되고, 이는 곧 이민이라는 형태로 자리매겨졌다. 외지인과 본토인, 즉 중국 출신 대만인과 대만인의 갈등은 학대와 차별로 번졌다. 이 역사를 정당한 해결책 없이 곪을 대로 곪게 덮어두고 있는 대만 정부. 본성인(本省人)과 외성인(外省人)의 갈등 구조와 학살의 역사,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아주 뜨거운 토론과 싸움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정체성. 동시에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영상과 설치물은 자칫 편협적으로 보여질 수 있을 아득한 관계의 중심에 서서 관객을 이끈다.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은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역사를 담은 공간을 재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 혹은 그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대의 이야기를 완전히 전달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즉, 당신이 상상한 공간은 그들이 소환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무대이다. 이 연극의 특징 중 하나는 신체를 가진 사람이 무대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공간을 이루는 사물들은 각자의 배역을 맡은 사람처럼 나레이션을 따라 무대에 오른다. 관객은 아주 잘 짜인 극본에 따라 움직이는 사물들과 영상을 감상한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의 위치에서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력만을 믿고 극을 올린 셈이다. 사물들은 자신의 상징과 의미를 활용하여 맡은 바의 역할을 연기한다. 이때 극이 얼마나 호소력 있는지는 사물의 상징과 의미에 달렸다. 〈FM 100.8〉의 사물-배우들은 유령이고, 욕망이며, 전이된 대상이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사물-배우들의 연기력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의 상징과 의미 때문이다. 액자, 훈장, 미러볼과 같은 사물은 잊혀가는, 흐릿한 역사의 동음이의어로써 감정을 전달한다. 그런데도 관객은 신체를 가진 배우가 눈앞에 등장하지 않는, 이 기이한 연극 끝에서 배우의 호소를 느낀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사람이 ‘있었다’라는 상황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인이다. 부재를 통해 존재성을 부각하는 행위. 나는 이것이 작가의 행위의 결과이면서 의도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여기 광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용산 미군 기지와 간신히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역사의 터에서 쓸쓸함과 아픔을 느낀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에서 ‘유령’을 재소환한다. 그는 망령, 혼령으로도 부를 수 있는 ‘유령’을 정신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¹ 그러나 나는 감히 ‘유령’을 곧 정신의 일부 혹은 전체로 호명하고 싶다. 나의 ‘유령’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을 뜻하지 않고, 소외된 타자, 암묵한 자의 목소리이다. 그래서 ‘FM 100.8’은 연극 제목이자 소환하고 싶은 역사의 주파수이며, ‘유령’의 이름이고 ‘유령’ 자체이다. 유령을 현대에 다시 불러들여 그 의미를 재평가해 보는 것. 작가는 이 실험을 통해 ‘유령’은 우리가 떨쳐 버려야 할 존재가 아니며 고통이 가득한 역사의 효시로 보길 바란다. 개인과 나라의 역사 내부를 떠도는 유령을 사물-배우로 둔갑시키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유령이자 유령들의 연극인 〈FM 100.8〉을 감상하면서 당신은 어떻게 감상했는가? 배우의 대사에 당신은 응답했는가? ¹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07, 24쪽. 🌿 아현 파빌리온 프로젝트 《한 쌍의 메아리》는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전시관입니다. 그리고 〈FM 100.8〉은 제가 가장 흥미롭게 감상한 작품입니다. 이번 글에서 구독자분들께 제가 경험했던 작품의 인상을 최대한 진정성있게 담고 싶었는데, 생각한 대로 구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또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그때에는 많은 분들과 그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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