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글쓰기의 바톤을 받으세요! 🏃 릴레이 글쓰기 🏃 릴레이 글쓰기가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주자가 작품을 고르면, 두 번째 주자는 작품을 보고 따라서 그림을 그려봅니다! 세 번째 주자는 두 번째 주자의 그림을 보고 작품을 유추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못 찾아내면 어떡하냐고요? 괜찮습니다! 이때, 세 번째 주자는 자신의 임의로 작품을 골라, 글을 쓰는 네 번째 주자에게 전달합니다. 과연, 첫 번째 주자가 고른 작품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요? 어둠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글. 수연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해하고는 했다. 한 가지에서 전문성을 갖추려다가도 다른 부분에 눈이 간다. 좋게 말하면 다방면으로 아는 게 많은 사람이지만, 반대로는 끈질기지 못한 사람이다. 영화 장르든, 연예인이든, 언어든, 하나를 깊이 파고들 이유를 몰라서 그랬다.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전념해서 좋은 게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해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을지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취미로 사진을 찍는 C를 알게 되었다. C가 중고로 구매했던 디지털카메라에는 을지로의 풍경만이 담겨 있었다. 상가가 없어진 자리, 비 오는 날 좁은 골목길에서 어둠을 밝히는 을지로의 인쇄 간판, 퇴근길에 즐비한 자동차들을 꼭 품은 노을. C는 을지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종일 한 장소에서 버틴 날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는 ‘을지로가 이렇게까지 낭만적인 곳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풍경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도 C가 담은 모습은 무언가 달랐다. 작품을 더 둘러본 후에는 ‘어쩜 이렇게 분위기 있는 공간을 잘 찾아냈지, 신기하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C의 사진은 단순히 찰나의 영감으로, 운 좋게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C는 그야말로 을지로의 거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고 있었다. 작품에는 C가 을지로를, 을지로가 품은 거리를, 을지로를 비추는 노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드러난다. 그에게 을지로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C에게 을지로는 살아서 숨을 쉬고,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하는 이에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생명체였다. 풍경 사진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상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이 느껴지는 C의 작품을 보며 모네가 떠올랐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인상, 해돋이〉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는 연작이 많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모네는 1890년 이후 《건초더미》, 《포플러》,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의 연작을 통해 같은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표현했다. 동시대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은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모네의 작업방식의 특징은 소재를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직관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대상이나 풍경을 그릴 때 아주 짧은 순간에 펼쳐진 빛에 의한 특질, 풍경을 둘러싼 대기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따라서 모네의 눈에는 매시간, 매분, 매초 빛의 변화가 느껴졌다. 이렇게 순간적인 빛의 변화를 포착하는 행위는 같은 소재의 반복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시간, 계절, 날씨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대기 현상에 따라 고유한 색감과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모네는 자연스럽게 작업방식을 연작 형태로 이어갈 수 있었다. 모네는 1890년에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3년 뒤 지베르니에 집을 마련하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정원을 가꾸었다. 모네는 연못을 만들어 수련을 심고, 연못 위로 일본풍의 아치형 다리를 설치했다. 여섯 명의 정원사를 두고도 몸소 정원을 가꿀 정도로 모네는 정원에 큰 애착이 있었고, 이러한 열정은 그가 《수련》 연작을 제작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수련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식물들을 심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었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의 마법이 나에게 나타났다. 나는 팔레트를 들었다. 그 이후부터 다른 모델을 찾지 않았다.”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 〈수련〉, 1920~1926, 캔버스에 오일, 219×602cm, 오랑주리미술관, 프랑스 (이미지 출처: https://fr.m.wikipedia.org/wiki/Les_Nymph%C3%A9as) 안타깝게도 종일 빛을 직접 보는 작업방식은 모네에게 백내장이라는 시력 장애 질환을 안기고 만다. 그는 1912년에 백내장을 진단받고도 수련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련’을 그린 수많은 작품 중 1920년부터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렸던 〈수련(Les Nymphéas)〉(1920~1926)은 그가 1923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은 전후로 그려진 그림이다. 수술 이후에도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빛의 색을 구분할 수 없어 완전히 붉은 색조를 사용했던 이전보다는 확실히 연못과 수련을 알아보기 쉽다. 모네는 조금이지만 회복한 시력으로 계속 수련을 그려나갔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모네는 여전히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른 인상을 포착했고,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있었지만, 회화적 공간 연구에 점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초기 《수련》 연작에서는 일본풍의 아치형 다리와 수련을 포함한 다양한 식물군, 연못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네의 시각은 점점 확대되어 구조화된 공간은 사라지고 수평선은 점차 화면 위로 올라가다가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후기 《수련》 연작에서는 〈수련(Les Nymphéas)〉과 같이 수면의 표현만 나타난다. 정원과 수련, 연못은 모네에게 우주였다. 모네에게는 수련이, C에게는 을지로가 온갖 세상을 반영하는 대상이었다. 이들을 묘사하는 일은 단순히 대상을 잘 옮기는 게 아니라, 마치 식물처럼 생명체를 생장하게 하는 일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가족이 수십 년에 걸쳐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았다. 이는 ‘나’를 계속해서 탐구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사진은 일기처럼 삶의 궤적을 드러내 줄 수 있다. 삶의 여러 지점에서 겪는 변화가 ‘나’의 외형에도 드러날 테니 말이다. 모네는 화가에게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는 백내장으로 말년에 고생을 겪었다.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화가로서 자신의 인생과 예술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풍랑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내는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력 장애가 생긴 후 모네의 그림에서 빛의 색은 찾을 수 없는가? 말년의 그가 작품에서 붙들었던 빛은 어느 화가도 화폭에 담지 못했던, 아름다운 영혼의 빛이었다. 🙌 참고 자료 1. 임인경, 「수련을 그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연구 : 지베르니기를 중심으로」, 대구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7. 👻 현지 제가 마지막 주자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고른 작품은 장종완 작가의 〈알프스 민들레〉였습니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수연이 이 그림을 보고 어떤 글을 쓸지 궁금했고, 보고 싶었기 때문에 고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 강리의 따라 그리기는 꽤 훌륭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한 차례 뒤틀림이 일어나 수련 연작 중 하나가 전달되었더군요. (살짝 황당하긴 했습니다😂) 「어둠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은 취미로 사진을 꾸준히 찍는 C에 대한 이야기와 꾸준히 수련을 그려간 모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꾸준함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는데요, 저는 목적을 달성하면 끈질김이 옮겨가는, 목적형 꾸준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파고들고 있는 것이 지금 있든, 없든. 우리 삶에서 무언가를 경험하며 몰입했던, 꾸준함을 꿈꾸었던, 반짝이던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을 떠올리며 이 글을 읽으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오늘, 땡땡레터 어땠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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