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돌아온 릴레이 글쓰기 『땡땡레터』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돌아왔습니다! 바로 ‘릴레이 글쓰기’입니다. 한 사람이 단어를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단어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선정한 뒤, 그 다음 사람은 그 작품에 관한 글을 쓰고, 마지막 주자가 단어를 맞춥니다. 아현은 현지가 고른 단어, 강리가 떠올린 작품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수연은 과연 정답을 맞출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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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저는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아직 제출해야 할 과제가 남았고, 마음속에는 응어리진 감정들이 엉켜있었지만요. 부정적인 생각을 상기시키는 일들은 뒤로한 채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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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휴가를 떠난 날부터 장마가 시작되어서 잔잔한 빗방울이 내렸습니다. 아홉산 숲을 거닐게 되자, 축축한 날씨의 습기와 가시지 않은 여름의 더위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하늘을 덮을 정도로 우거진 대나무 숲이 우중충한 날씨 탓에 그날따라 음산하고 더 고요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는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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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하루에 60cm 정도 자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빨리 성장해봤자 1년에 최대 약 20cm 정도 자랄 수 있다고 가정하면, 대나무의 성장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르지요. 높다란 대나무도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고작해야 3달 정도가 걸렸을 것입니다. 아마 제가 보았던 죽순 상태의 대나무는 이제 제 키만큼 자랐을지도 모르겠네요. 대나무는 인간보다 견고하고 우직한 상태를 빨리 가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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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처럼, 정말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바쁜 속도로 움직입니다. 하루에 자신의 키가 얼마나 크거나 줄고 늙거나 지혜를 얻었는지 깨달을 겨를도 없이 말이지요. 아마 제가 대나무 숲에서 저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쁜 사회에서 멀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힘든 내색이나 근심을 숨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통용되니까요. 하지만, 쌓이고 쌓인 고민은 대나무가 자라는 속도만큼 눈 깜짝할 새에 커지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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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금강경-지혜의숲〉, 2021, 한지에 수묵, 350×2200cm.
(이미지 제공: 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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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시끄러운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金剛經)은 “한 곳에 집착하여 머물러 있는 마음을 물러가게 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하는 이 불교의 경전은 ‘마음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¹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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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작가는 〈금강경-지혜의 숲〉(2021)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수행’합니다. 수묵화를 위해 한지를 제작할 때도 여러 장을 꼼꼼하게 반복해서 쌓아 올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한지 위에 5,194자의 한자를 옮겨 적는 거죠. 작가는 8년간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교에 관해 공부하였다고 합니다.² 그런 작가의 수행은 그대로 작업에도 드러납니다. 금강경이 전하는 ‘허망함’과 ‘견고한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얻어 열반하고자 하는 마음을 한 자, 한 자에 담아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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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금강경-지혜의 숲〉(2021) 작품의 일부.
(이미지 제공: 금호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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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지혜의 숲〉(2021) 앞에 선 강미선 작가.
(이미지 제공: 금호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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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의 거대한 작품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층고가 높은 흰 벽 세 군데를 이어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요. 작품이 그려졌다면, 편한 자세로 작품 앞에 다가가 감상해봅시다. 오천백구십사 글자에 다다르는 한자를 전체적으로 크게도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뜯어서도 보고, 한자를 해독하거나 한자의 모양새를 살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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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당신밖에 없는 그 공간에는 정적만 들립니다. 휘몰아치는 머릿속 생각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죠. 그렇지만 오랜 시간 작품 앞에 서서 폭포처럼 쏟아진 무수한 생각들을 날려 보낸 뒤, 다시 한번 작품을 봅시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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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느끼신 감정이 제가 대나무 숲을 하염없이 걸으며 생각을 날려 보냈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눈앞에 있는 풍광과 몸의 상태 등 외형에 집중했지만, 후에는 나(我)와 세계(世界)만 남게 됩니다. 저는 아직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작품은 그 가르침에 다가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어떠한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요. 여러분도 정적의 소리가 들린다면, 이 작품을 떠올리며 답을 찾아가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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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른 단어는 바로 ‘휴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문단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생각만 해도 달콤해지는 단어기도 하지만, 요즘 이 단어를 떠올릴 때 저는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휴식이란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모습은 해야 할 일하지 않는 직무 유기 상태로 계속 쉬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기나긴 쉼에 쉼표를 찍고 일상을 되찾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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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이었습니다. 지난해에 부러진 척추뼈가 마저 붙지도 못했던 때였지만, 오전부터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어 무작정 종로로 향했습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도착한 삼청로에서 건춘문을 향해 걷다가 돌연 금호미술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금강경 – 지혜의 숲〉을 만났습니다. 눈으로 더듬거리며 육체적인 조건을 잠시 잊고 몰입했던 경험이 저에게는 순간의 휴식이었습니다. 여러분께는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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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가 전달해 준 작품은 처음 본 것이라 강미선 작가님과 작품에 관해서 많이 알아보았습니다. 아직도 작품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제가 글에서 표현한 마음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고 나아가 ‘금강경’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리는 현지한테 이 단어를 받고 반가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과연 무슨 단어일까요? 저는 ‘진심’, ‘이름’이리라 추측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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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시한 답은 ‘명상’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틀렸네요! 정답을 맞히기 전, 이 작품과 관련한 강리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이 강리뿐이어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 분위기는 어땠을까,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명상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작업하는 수행의 과정을 가늠할 수조차 없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이 작품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 실제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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