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훈 작가를 만나보세요!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에서 만난 두 번째 인물은 김남훈 작가입니다. 아쉬LAB high에서 한창 전시를 준비 중인 작가님을 만나 작업적 관심사부터 작품 전반에 관하여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전시에 앞서, 김남훈 작가님의 이전 작업 일부를 이번 레터에서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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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안녕하세요. 자유로운 방식으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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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저는 설치미술을 하는 김남훈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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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초기 작업 〈green line〉의 주재료는 청테이프입니다. 〈green line〉은 익명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에서 출발하여, 길 위에 버려진 사물이나 철거된 건물,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들과 같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소외된 것에 청테이프를 바르는 작품입니다. 왜 청테이프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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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청테이프는 어릴 적 기억, 그리고 제가 겪거나 목격한 죽음으로부터 떠오른 재료입니다. 제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어요. 무단횡단하던 사람이 버스에 치였던 사고예요. 구급차가 오니까 저처럼 그 자리에서 발을 못 떼던 사람들이 기다리던 버스를 탔어요. 그런데 버스 안에서 몇 사람들이 ‘저럴 때 만지면 큰일 나, 만졌다가 괜히 더 다치면 덤탱이 쓸 수도 있어’라고 말했던 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에 슬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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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겪은 직후에는 죽음을 인식하고 슬퍼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요. 죽음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이나 존재가 있었음을 표시하는 순간 상기하게 되기도 하죠. 저는 교통사고 당했던 사람을 잊고 살았는데 사고가 처리된 후 도로에 흰색 스프레이 선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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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고를 목격하면서 개인사에서 어릴 적 두 누이를 잃은 기억이 오버랩되었는데 당시의 시각적인 기억은 청테이프였어요. 창틀, 난로, 아버지가 늘 읽으시던 책에도 청테이프가 붙어 있었거든요. 이 사고 후에 청테이프를 이용해 일기를 쓰듯 드로잉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후에는 교통사고로 인해 도로에 생긴 흰색 스프레이 선을 따라 청테이프를 붙이기도 하고, 철거된 건물에도 청테이프로 덮는 등의 작업을 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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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어릴 적 기억에 청테이프가 있었고, 교통사고를 목격한 것이 어릴 적 겪은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군요. 오랫동안 방치되고 비어 있었던 독일의 홀터만 백화점에 설치된 작업으로 〈I have a dream in 4'44''〉이 있죠. 이전에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그곳에서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비디오로 소환한 작업이에요. 이렇게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잃고 퇴색되었거나, 다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변모한 장소라는 점에서 아쉬랩과도 유사성이 보입니다. 그래서 아쉬랩에 작가님께서 가진 관심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아쉬랩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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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아쉬랩은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를 함께하게 된 황아일 작가님의 제안으로 처음 와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전에 문 닫은 지 오래된 요양원에서 전시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침대, 의료기기 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방마다 특색이 있어서 참 멋진 공간이었는데 아쉬웠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오가는 와중에 무산되어서, 다음에 철거 지역이나 빈집에 들어가면 그때 이야기 나눈 것들을 해보자고 했는데 황아일 작가님이 먼저 이 공간을 알게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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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왔을 때 정말 멋있어서 전시장보다도 작업실로 쓰고 싶었어요. (웃음) 내부를 다 철거해 버리고 콘크리트 바닥, 벽, 천장이 해체 상태로 남아 있는데 그런 텅 빈 곳이 더 매력적이에요. 아쉬랩이 위치한 한남동은 이전에 작업하러 온 적이 있어서, 이 지역의 특성과 분위기가 어떤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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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한남동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해요. 독일의 뮌스터, 한국의 용인, 수원, 고양에서 수집한 물질을 플루오레세인 나트륨이 첨가된 액체에 담근 수족관 연작이 흥미로웠습니다. 플루오레세인 나트륨은 일반적으로 연구실에서 병원균을 찾기 위해 염색하는 것으로 쓰이는데요. 저는 이 분말의 존재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어요. 작가님께서는 어떤 고민을 통해 이 분말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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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우선 쓰레기를 수집한 계기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독일에서 작업실과 학교를 오고 갈 때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동네가 사건 사고 하나 없이 평화로운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유일하게 일상을 깨는 게 바로 쓰레기입니다. 속옷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굉장히 사적인 물건이 길 한복판에 있는 게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쓰레기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어요. 누군가 버리거나 잃어버린 소지품은 누군가로부터 한동안 소유된 시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거리의 파편 같은 쓰레기로 구석에서 외면받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여기서 버려진 쓰레기들은 그 당시에만 존재하는 도시의 시간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러한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는 척도로 쓰레기를 모았어요. 제가 여러 도시에서 이 작업을 하다 보니 도시마다 특징이 있어요. 뮌스터에는 죽은 토끼가 많이 발견됐고, 용인에서는 부동산 투자 명함이나 아파트 광고, 고양에서는 속칭 ‘삐라’라는 선전용 불온 전단이 많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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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green line〉 연작에서 무언가를 눈에 띄게 만들려고 청테이프를 쓰듯, 플루오레세인 나트륨도 그런 의도로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미술을 취미로 하던 약사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매체를 추천해줬습니다. 애초에 기능이 눈에 띄지 않는 병원균을 ‘눈에 띄게’ 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할 때 한 움큼의 플루오레세인 나트륨을 바다에 뿌리면 바다가 빠르게 형광으로 변해 넓게 퍼진다고 해요. 하늘에서 수색대가 비행기의 사고 장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요. 이렇게 활용된다는 것도 제 작업의 의도와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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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쓰레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다음은 죽은 날벌레 18,911마리를 늘어놓은 〈18911 죽음의 열거〉에 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날벌레가 인간에게는 손뼉 한 번으로 생을 마감할 만큼 나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만 마리의 죽음을 마주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날벌레의 죽음을 목격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작가님께서 느낀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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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18911 죽음의 열거〉 말고도 그간 제게 났던 상처를 기록한 〈흔적〉 연작도 있어요. 옛날에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학교에서 카메라를 빌려 쓰거나 중고로 사서 썼어요. 당시에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저곳에서 동호회가 생기는데, 거길 보면 일반인임에도 전문가인 저보다 더 좋은 장비를 쓰는 거예요. 그때 돈이 있어도 아무나 하지 않는 것,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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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쓰레기를 수집하지 않아요. 가치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작가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죠.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없는 일 말이예요. 〈18911 죽음의 열거〉는 제가 고양에서 레지던시할 때 수집한 날벌레들이에요. 어느 여름밤에 폭풍우가 오는 바람에 날벌레가 방충망을 뚫고 들어와서 창고에 수북이 쌓여있었어요. 그래서 이것들을 핀셋으로 모아 세어보기로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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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는 게 체질에 안 맞아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인데 돋보기로 확대하면서 붙이고, 온종일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요.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의 위치를 관찰하면 입자로 발견되고,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파동 간섭무늬로 발견돼요. 물질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버려진 쓰레기나 죽은 날벌레나, 제가 보니까 존재하는 것이지 제가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이것들을 관찰하고 수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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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남다른 수집 행위가 작가로서의 필요성과 의무감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역할도 함께 설명해 주신 것 같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6년 〈모스_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모스 부호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더 이상 누군가를 비추는 역할에서 벗어난 전등이, 이제는 스스로 빛을 내며 자신을 알린다는 의미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모스 부호 작업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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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훈: 한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집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건너편 옥상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센서 등이 깜빡거리는 걸 봤어요. 센서가 망가져서 바람이 불면 깜빡이는 건데, 그게 마치 저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것에 답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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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모스 작품이 2017년의 〈모스_별〉입니다. 한남동 일대의 버려진 집에서 백열등을 가져와서 새 백열등과 섞어서 작업했어요. 모스의 내용은 영화 〈The Fault In Our Stars(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2014)에서 두 주인공의 대화입니다. 한 사람은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특별한 삶을 살 것이기에 기억되지 못하는 게 두렵다고 해요.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해보게끔 하더라고요. 그리고 둘의 대화가 빛의 신호로써 누군가에게 읽히길 기다리는 게, 제가 쓰레기를 줍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발견해야 존재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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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을 곰곰이 되새겨봅니다. 별은 운명을 비유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잘못은 우리가 한 게 아니라, 그저 운명일 뿐이라고. 운명에도 많은 잘못이 있다고.' 우리 별은 불합리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김남훈 작가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것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작가는 오늘도 정의할 수 없는 의무감을 지닌 채 덤덤히 누군가의 궤적을 좇습니다. 저라도 찾아내어 그것이 계속 있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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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은 수년간 관찰, 수집, 기록의 작업방식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도시의 균열을 청테이프로 막고, 몸에 난 상처를 기록하고, 죽은 날벌레를 배열하고, 콘크리트 사이 풀에 물을 주며, 거리의 쓰레기를 모으는 작가의 사소한 무용(無用)의 행위를 통해 거대 도시에서 비주체를 위한 기억을 소환하는 주체적 행위를 시도한다. 회화와 설치를 전공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3》(2002), 서울시립미술관의 청계천프로젝트 《물위를 걷는 사람들》(2003), 공공하는 예술 《환상벨트》(2018)를 비롯한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2년 매거진 아트인컬쳐 ‘뉴페이스’, 2018년 네이버 문화재단 ‘헬로 아티스트’에 선정 되었고,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와 2018년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입주직가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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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
참여 김남훈, 황아일 글·디자인 땡땡콜렉티브 기간 2022.10.14.~2022.11.13. 오프닝 2022.10.14. 오후 5시 관람 시간 오후 1시~오후 6시 (일, 월 휴관) 장소 아쉬LAB high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6가길 2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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