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를 살펴보세요! 지난 땡땡레터에서 아현과 함께 둘러본 아쉬LAB high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공간과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았던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주에는 강리와 함께 전시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를 기억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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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부에 이름을 쓰다가, 문득 뜻을 헤아려본다. 굳셀 강(姜)과 이로울 리(利)로 이루어진 이름. 한 글자는 나를 위해, 한 글자는 너를 위해 쓴다. 아니, 어쩌면 나와 너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절망과 슬픔 가운데 마음을 다잡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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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사람을 만든다”는 오래된 말이 이토록 생생해서, 나는 종종 제목이 전시를 만든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한남동의 골목길을 오르면서도, 이 전시의 제목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김남훈과 황아일이 각자 제안한 구절을 곱하여 제목으로 삼았다는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에는 어떤 기대와 믿음이 묻어있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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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김남훈, 〈Maybe that’s nothing special〉, 2013~2019, 싱글채널비디오. (이미지 제공: 김강리)
(우) 황아일, 〈검은 숲 Ⅱ〉, 2022, 라텍스 페인트와 다섯 개의 유리판, 각 71×195cm. (이미지 제공: 김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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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은 거리에 보도블럭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싹부터 무심코 버려진 사물과 너무나도 작은 작은 날벌레의 시체까지, 마치 돋보기로 비추어보듯 “작고, 작은” 것을 바라본다. 때로는 그들을 만날 날짜를 기록하거나, 그 수를 헤아리는 방식으로 살펴보기도 한다. 너무나도 사소하여 보통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을 지금/여기로 끌어당기며, 지금까지 간과했던 가능성의 지대로 나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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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아일은 유리창에 붙인 컬러 시트지를 깍아내고 종이를 찢어내어, 비존재(Abwesen)을 응시하게 한다. 한편, 〈검은 숲 Ⅱ〉(2022)의 일부는 산산히 쏟아져 내렸고 〈의심 조각〉(2022)의 파편은 간신히 서로에게 기대어 서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중력에 순응하거나 맞서면서 그를 드러낸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에서 발견한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라는 문구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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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의 제목은, 얼핏 아무런 관계가 없는 두 표현의 만남처럼 들린다. 그러나 두 구절은 같은 태도에서 출발했다. 이를테면 지배적인 규범의 베일을 벗겨내고 지금껏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가짐. 전시의 제목을 곱씹으며, 이토록 기나긴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어떤 날을 상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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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
참여 김남훈, 황아일
글·디자인 땡땡콜렉티브
기간 2022.10.14.~2022.11.13.
관람 시간 오후 1시~오후 6시 (일, 월 휴관)
장소 아쉬LAB high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6가길 2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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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의 포스터를 만들다가, 중력의 의미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중력은 자연계의 네 가지 힘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천체 운동의 기초가 될 정도로 거대하다고 합니다. 반대로 핵력은 적용 범위가 매우 좁지만 가장 강력하다고 합니다. 핵력은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입니다. 어떤 힘이 아무리 거대해보일지라도, 곁을 공유하는 일이 더욱 강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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