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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지 않는 마음에게
어떤 인사로 편지를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선뜻 안부를 묻기 두려운 요즘입니다.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10월 29일, 저는 을지로에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한 사람이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전했습니다. 핼러윈, 이태원, 인파. 세 단어의 조합은 놀라울 것이 없었기에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천천히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심야버스에 탔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SNS에 게시물을 올리고는 까무룩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여 집에 도착했습니다. 피로를 씻어내고 베개에 머리를 괴었습니다. 비몽사몽한 와중에 SNS에 올렸던 게시물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좋아요’를 받았을지 궁금했구요.
그래서 SNS에 다시 접속했습니다. 그제서야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동안 알 수 없는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슬픔인 듯 하다가, 죄책감인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도통 어떤 감정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습니다.
문득 《푸른 낮의 필사》(임시공간, 2022. 9. 20. ~ 10. 8.)의 리플렛에서 읽었던 홍도연 작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인현동 화재 참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고, 인천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던 동인천 골목까지를 반복하여 걸었다고 합니다. “걷는 일에 몰두하면 ‘인현동 화재 참사’가 왜 나의 마음에서 되풀이해서 떠오르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인현동 화재 참사는 1999년 10월 30일 지하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이 2층의 호프집까지 번지며 발생했습니다. 청소년에게 문화적 탈출구였던 이 호프집은, 사고 당일에도 인천 시내 10여개 고등학교에서 가을축제가 끝나 뒤풀이를 하던 학생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자, 매니저는 “돈 내고 가라”며 출입구를 막고 혼자 도망쳤습니다.
〈’임시공간’에서 동인천 골목까지 걷기〉는 인천역에서 동인천 골목까지 홍도연 작가가 인현동 화재 참사를 떠올리며 걸었던 자국입니다. 수평으로 걷는 연필선은, 지우개에 의해 흐려지기도 하였다가, 다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참사의 기억을 재생하는 홍도연 작가의 작품을 따라 걷자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이 도처에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닳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현동 화재 참사는 오랫동안 희생자의 일탈로 치부되었습니다. 하지만 호프집이 지역 공무원과 유착하여 청소년을 상대로 하여 불법적으로 영업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인현동 화재 사건과 관련한 기록물이 공식적으로 발간하여 우리의 기억을 바로잡기도 하였습니다.
홍도연 작가의 얇은 연필선이 하나둘 모여 넓은 길을 만들듯이, 우리가 함께 걷는다면 새로운 장면을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을 되새김질 하고 있을 당신과 함께 걷겠습니다.
2022. 11. 11.
강리로부터
👾 강리
처음 “편지”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저는 팬레터를 쓰고 싶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글을요. 하지만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를 쓰고나니 어떤 말도 이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무거운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럼,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만납시다.